길쭉한 몸체의 불룩한 원통(약통) 부분에 화약을 충전한 뒤 화살을 장전하고 심지에 불을 붙이면 그 폭발력으로 화살이 전방 150m(추정)까지 날아간다. 인명 살상은 물론 방패 3개를 뚫을 정도의 위력이다. 고려 무신 최무선(1325~1395)의 주도로 우리나라에서 제작되기 시작한 초기 화약무기가 이랬다. 화통(火筒)이라 불린 이 장비는 사람의 힘으로 쏘는 활보다 사거리와 파괴력이 혁신적으로 높았다. 다만 문헌 외에 실물로 전해진 게 거의 없어 보물로 지정된 화약 무기류 14건 가운데 제작 시기가 가장 이르게 확인되는 것도 16세기 천자총통(天字銃筒·1555년)이다.
한국형 화약무기 개발 역사를 새로 쓰게 할 실물 화통이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 금성산 정상 인근에서 발견됐다. 지난 2023년 11월 지뢰 탐지 작업 중 표토 10㎝ 아래 묻힌 채 발견된 이 금속 물체는 피리 같은 형태(길이 23.75㎝)에 구경은 500원 동전 크기(1.66㎝)이고 무게는 1032g. 유물의 보존처리 및 연구를 담당한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이하 연구소)는 21일 “몸체에 새겨진 총 28자의 글자를 통해 명칭은 황자화통(黃字火筒), 제작은 정사(丁巳)년 12월임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나주 금성산에서 발견된 황자화통을 하드 X레이 및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확인한 내부 모습. [사진 국립나주문화연구소]
연구소는 이날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약 3년간의 연구 성과와 함께 유물을 공개하면서 “관련 기록과 대조할 때 정사년은 1377년(고려 우왕 3년) 또는 1437년(조선 세종 19년) 둘 중 하나”라며 “어느 쪽이든 우리나라에서 발견·발굴된 화약무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라고 강조했다.
1377년은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火桶都監)이 설치돼 국가(고려) 차원에서 처음 화약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해다. 화통 내지 총통의 발전은 조선 세종대에 급진전을 이뤄 1445년 규격화되기 시작했다. 연구소의 어창선 학예연구실장은 “황자화통의 약통은 1445년 이후 개량된 길쭉한 격목(擊木) 구조와 확연히 차이 나는 둥근 형태”라면서 1377년 혹은 1437년이라는 추정 근거를 설명했다. 몸체에 긴 손잡이를 끼우면 약 1.2m로 개인 휴대용 화기에 해당한다.
휴대용 화약무기인 황자화통을 사용하는 모습(AI 이미지). [사진 국립나주문화연구소]
나주 금성산은 나주평야와 영산강을 통제하면서 왜구 등을 방어하는 지리적 요충지였다. 앞서 조선시대 무기인 비격진천뢰가 발견되기도 했다. 어 실장은 “원나라에서 관련 기술 전래 이래 화약무기 생산은 국가가 통제한 최첨단 기술이었다”면서 “기록상으로 볼 때 군기감에서 생산해 요충지에 내려보낸 것 같다”고 했다. 군기감은 고려·조선시대에 병기 등 제작을 담당한 관청이다.
금성산 정상 부근엔 1966년 미사일 군사기지가 만들어져 통행이 제한돼 왔다. 이번 발견은 시민 요구에 따른 등산로 조성을 앞두고 군이 미확인 지뢰를 탐지하던 중에 이뤄졌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K방산의 휴대용 로켓무기인 바주카포의 처음 형태에 비유할 수 있는, 우리나라 화약무기의 새로운 발견”이라면서 “발사체 재현 실험연구 등도 차근차근 하겠다”고 했다. 황자화통은 23일부터 11월 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