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론 ‘피에타’ 이후 14년 만에 본상을 수상한 영화 ‘가능한 사랑’은 전도연의 연기도 호평 받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절망적인 현실을 비춰온 이창동 영화가 보름달 같은 희망을 품었다. 올해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가능한 사랑’이 21일 서울 CGV용산에서 언론시사로 국내 첫 공개됐다.
영화는 이 감독이 “10여 년 전 한 대기업의 대량해고와 파업농성의 강제진압 사태에 받은 충격”을 현대 사회의 적나라한 계급 풍속도 속에 새겼다. 상영 후 주연 배우 설경구·조여정·조인성과 함께한 기자회견에서 이 감독은 “(베니스) 수상은 결과일 뿐 이 영화가 처음 관객과 만나는 자리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가 중요했다. 잘 반응해주셔서 기쁘다”고 짧게 소감을 밝혔다. 이어 “과거 영화화하려다 내가 과연 그 이야기를 정직하게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나, 그에 확신이 없어 접었던 작품”이라면서 “어쩌면 저도 (극 중 예지처럼) 자본과 결혼한 사이인지 모른다. 창작자의 운명이다. 그 속에서 남의 고통을 착취하지 않고 어떤 진실, 정말로 사랑하려고 하는 마음,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작품 취지를 밝혔다. 전도연은 뉴욕 연극 공연 일정으로 미국에서 화상 참석했다.
해고노동자를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가 미옥(전도연) 부부를 만나는 첫 장면이 자살한 옥쇄파업 노동자의 장례식이다. 옛 동료를 조문 간 호석(설경구) 역시 옥쇄파업 때 전투경찰에 집단구타 당한 여파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처지다. 영화는 유령처럼 껍데기만 남았던 그의 삶이 다시 차오르는 순간까지 나아간다. 미약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가족의 사랑이 부각된다. 그 중심에 아내 미옥이 있다.
열여섯에 만난 첫사랑 호석과 결혼한 미옥은 호석의 해고 후 마스크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건사한다. 우울증이 깊은 호석,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10살 난 아들 철(정섶)을 일상적 애정으로 지켜낸다.
시한폭탄 같던 이들의 고통을 수면 위로 터뜨리는 계기가 예지(조여정) 부부와의 만남이다. 부유한 남편 상우(조인성) 덕에 생계 걱정 없이 영화를 만드는 예지가 이들 부부를 상우의 고급 바닷가 별장으로 초대한다. 상우의 별장에는 막대한 부를 일군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경찰을 하던 시절 썼다는 호루라기가 남아있다. 우정을 가장한 위화감 속에 미옥과 호석이 억눌러온 고름이 터져나온다.
이창동 감독은 타인의 삶을 다루는 창작자로서 고민도 영화에 투영했다. [뉴시스]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 영화를 시작하는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은 이 감독이 거장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연작 ‘십계’ 시리즈에서 영감 받은 문구다. 처음엔 예지의 수백만 원 명품가방, 남편을 우러르는 미옥을 두고 하는 말 같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미옥과 호석의 삶을 작품 소재로 탐하는 예지와, 물려받은 부로 더 큰 부를 갈취해온 상우에게로 향하는 문구다.
다만, 예지의 카메라는 호석이 억눌러온 속내를 처음 토해내는 방아쇠의 역할도 한다. 미옥은 상우의 별장에서 비로소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을 자각한다. “자본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우리 마음 속 자유”라는 이 감독의 주제의식이 담긴 게 미옥의 별장 장면이다. 전도연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바다와 한몸이 되어 연기해냈다. 이 감독이 현장에서 시원스레 OK를 외쳤다는 순간이다.
전도연의 이번 연기는 아이를 유괴당한 ‘밀양’, 세월호 유족을 그린 ‘생일’(2019) 속 모성 연기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역대 이창동 영화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극을 이끄는 여성 캐릭터이기도 하다. 전도연은 “자본으로부터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을 빼앗길 상황에 놓인 미옥이 온몸으로 저항하며 자유를 선택하는 강렬한 감정을 연기했다”고 말했다.
‘가능한 사랑’은 오는 23일부터 약 2주간 극장 상영한 뒤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