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만에 환율의 방향이 뒤집혔다. 1330원대까지 내려왔던 원-달러 환율은 다시 1400원 선을 넘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3년 2개월 만에 금리를 올리고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열어두면서 달러가 다시 힘을 얻은 영향이다.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387.3원에 출발했지만, 오후 3시30분 기준 전 거래일보다 2.30원 내린 1381.00원에 마쳤다. 이달 9일 1336.1원이었던 환율은 18일 1383.3원까지 7거래일 연속 올라 47.2원 뛰었다. 21일 종가도 9일보다 44.9원, 3.4% 높다.
배경은 Fed발 강달러다. Fed는 16일 기준금리를 연 3.75~4%로 0.25%포인트 올리고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전 99.5선이던 달러인덱스는 직후 100.2선으로 뛰었고 이날도 100.3 안팎을 유지했다.
Fed발 금리 충격에 고유가까지 겹치면서 아시아 통화가 일제히 흔들렸다. 미 국채금리가 오르면 달러 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유가 상승은 원유 수입에 필요한 달러 수요를 늘린다. 아시아 주요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 강달러에 고유가까지 겹치면 원유 결제용 달러 수요가 늘면서 통화 가치가 더 쉽게 밀린다.
같은 충격에도 원화가 더 크게 흔들렸다. 최근 10일간 주요 아시아 통화 가운데 원화 가치 하락(환율은 상승) 폭은 주요 통화 중 가장 컸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9일부터 21일까지 엔-달러 환율은 2.3%, 바트-달러(태국)는 1.4%, 루피-달러(인도)는 1.2%, 페소-달러(필리핀)는 0.8%, 루피아-달러(인도네시아)는 0.6% 올랐다. 원-달러 환율은 같은 기간 3.4% 상승했다.
원화는 글로벌 금리와 위험 회피 심리에 특히 민감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국인 주식자금 움직임이 환율 수급에 빠르게 반영되고 반도체 등 경기 민감 업종 비중도 높아 위험 회피가 강해질 때 주가와 원화가 함께 압력을 받을 수 있다. 국내 수급도 원화 약세를 부추겼다.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과 관련해 달러 유입이 마무리되고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환 변동 위험회피)가 중단됐다는 소식이 겹쳤다. 법인세 중간예납을 앞두고 기업의 달러 매도 수요도 약해졌다.
일본은행(BOJ)도 지난 18일 기준금리를 올려(연 1→1.25%) 31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였지만, 엔화 약세는 더 심해졌다. 한은 ECOS를 보면 엔-달러 환율은 9일 153.58엔에서 21일 157.07엔으로 2.3% 상승했다. 일본 외환당국은 18일 주요 은행에 환율을 묻는 ‘레이트 체크’에 나섰기도 했다. 레이트 체크는 실제 시장개입에 앞서 실시되는 경우가 많아, 시장에서는 일본 당국이 엔화 매수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프레드 노이만 HSBC 아시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로이터에 “투자자들은 BOJ가 금리를 더 올려 Fed의 긴축을 따라갈 의지가 있는지 다시 시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당분간 1400원 선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유가가 다시 오르거나 엔화 약세가 심해지면 원-달러 환율의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Fed 긴축 우려가 상당 부분 반영된 데다 반도체 수출도 견조해 환율 상단은 제한될 수 있지만 높은 유가는 환율이 내려오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