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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구의 시시각각] 법무장관, 대통령 충복 아니다

중앙일보

2026.09.21 08:18 2026.09.2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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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구 논설위원

김형구 논설위원

영문 명칭에 ‘정의’라는 이름표를 단 법무부(Ministry of Justice)는 역설적으로 불공정 논란의 진원지가 되곤 했다. 필자가 지난 3년간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현장을 지켜봤던 미국에서도 그랬다.

전임 조 바이든 정권 때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사건 등으로 형사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사법의 무기화’로 규정하며 법무부 개조를 시도했다. 최우선 인선 기준은 충성도였다. 강성 충성파를 장관에 앉혀 정적 청산을 맡기려던 심산에서였다.

많은 통치자들, 측근 임명 유혹
대가는 민심 이반, 불행한 결말
‘사법리스크 해소용 장관’ 안 돼

그러나 지명된 인사들은 하나같이 자질 논란에 휩싸이거나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첫 법무장관에 지명된 맷 게이츠는 미성년자 성관계 등 비위 의혹으로 청문회에 서 보지도 못하고 지명 철회됐다.

뒤이어 등판한 플로리다주 법무장관 출신의 팸 본디도 끝이 잔혹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탄핵 재판 당시 변호인단에 참여했던 충성파인데, 14개월 만에 장관직에서 쫓겨났다. 지지부진한 대통령 정적 수사가 트럼프의 격분을 사서다.

잇따른 실패 후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카드가 토드 블랜치 현 장관이다. 트럼프가 기소된 형사사건들을 직접 맡았던 개인 변호사 출신이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했던 변호사를 법무부 수장에 기용하면서 “국가 형사사법 체계의 사유화”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법무장관이 대통령 개인의 창과 방패 역할을 하는 법률사무소로 전락했다는 개탄이다.

우리 정치가 그려온 궤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 당시 민심 이반의 서막은 조국 법무장관 임명 강행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촛불혁명’ 이후 공정과 정의를 앞세우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조국 사태’로 상징되는 내로남불 논란은 공정의 가치를 뒤흔들었고 나라를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쪼갰다.

그다음 등장한 추미애 법무장관도 문재인 정부에 또 다른 대형 악재였다. 검찰 인사에서 시작된 법무부와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면충돌은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 검찰총장 직무배제·징계 등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 치달았다. 무엇보다 당시 윤 총장을 밀어내려던 싸움이 오히려 그를 ‘정권에 맞서는 인물’로 띄워올려 훗날 정권교체로 이어진 건 한 편의 부조리극 같았다.

법무장관은 어떤 자리인가. 헌법과 형사사법 체계를 수호하고, 국가를 대표해 소송을 수행하며, 법 앞에 만인의 평등을 증명해야 하는 보루다. 동시에 막강한 권한을 쥔 법무장관은 통치 권력이 사유화의 유혹을 강하게 느끼는 위험천만한 칼자루이기도 하다. 미국도 그렇듯 많은 통치자들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 충복(忠僕)을 그 자리에 앉히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하지만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결과는 어땠는가. 가장 먼저 민심이 등을 돌린다는 것을 동서고금의 역사가 말해 준다.

김승원 법무장관 후보자가 지난 19일 물러났다. 식약처 로비 의혹, 주가 조작 세력 연루 의혹, 배우자 돌봄기관 특혜 의혹 등 쏟아지는 부적격 논란 속에서다. 자격 미달 사유가 여럿이었지만 핵심 뇌관은 따로 있었다. ‘대통령 공소취소 모임’ 대표를 지낸 대통령 호위무사 이력 말이다.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기 위해 형사사법 시스템을 뒤흔들지 않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신뢰 붕괴의 본질 아니었던가.

이제 국민의 시선은 후임 법무장관이 누구일 것인가로 향한다. 또다시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해소 카드, 정권 방패막이 인사를 내세운다면 돌아선 민심을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다. ‘대통령의 충복’이 아니라 ‘국민의 공복(公僕)’으로서 적임자를 뽑아야 한다. 후속 인선이 정권의 명운을 가른다는 각오로 말이다.

다음 장관은 법무부라는 이름에 ‘정의’가 들어 있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대통령의 뜻과 법의 원칙이 충돌할 때 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재명 정부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정 운영의 동력을 되살릴 수 있다.





김형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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