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길어진 탓일까. 올봄부터 극장가를 장악한 공포물이 가을에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일 개봉한 공포 스릴러 ‘옵세션’이 3주째 박스오피스 2~3위를 지키는 가운데, 17일 개봉한 좀비 호러물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은 ‘옵세션’에 이어 박스오피스 4위를 차지했다. 북미에선 18일 개봉한 이래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하고 있다.
‘레지던트 이블’은 게임(캡콤사의 ‘바이오하자드’) 원작 영화이자 공포물로는 드물게 성공한 프랜차이즈다. 시리즈 8번째 영화인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은 북미 첫 주말(18~20일) 6000만 달러(약 814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시리즈 역대 최고의 오프닝 성적을 기록했다. 업계 예상치인 4000만~5000만 달러도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앞선 7편 중 가장 높은 오프닝 성적인 2600만 달러(‘레지던트 이블 4: 끝나지 않은 전쟁’)의 2배가 넘는 기록이다. 북미를 제외한 국가에서도 4830만 달러를 벌어 들이며 첫주에 총 1억 달러 매출을 달성했다.
이번 영화는 앞선 시리즈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리부트 버전이다. 눈이 펑펑 내리는 깊은 밤, 의료 택배 기사 브라이언(오스틴 에이브럼스)이 인적 드문 외딴 마을을 지나다가 피를 흘리는 괴상한 모습의 여성을 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렇게 ‘미끼를 물어버린’ 브라이언의 사투는 영화 끝까지 그치지 않는 눈발처럼 이어진다. 비명이 나올 만한 공포스러운 장면의 연속인데, 영화는 재밌다. 마치 ‘나홀로 집에’ 속 케빈(매컬리 컬킨)처럼 커다란 방울 모자를 쓴 브라이언이 해맑고 유쾌한 캐릭터라서다. 그가 곤경에 처하면서 벌어지는 블랙 코미디가 순도 높은 웃음을 유발하는 덕분에, 러닝타임 94분 내 긴장과 이완의 균형이 조화롭다.
'레지던트 이블:0번째 밤' 속 한 장면. [사진 소니 코리아]
이야기 구조는 한국 관객에겐 익숙한 좀비물의 문법을 따르지만,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 ‘킬빌’(2003)을 오마주한 전형적인 서구 호러 영화의 분위기와 게임 화면을 보는 듯한 연출이 기시감을 중화한다. 원작 게임의 팬이기도 한 잭 크거 감독이 호러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블랙 코미디를 잘 구현하는 자신의 장기를 살렸다. 공포물이면서 점차 히어로가 나오는 블록버스터 장르가 뒤섞인 밀라 요보비치 주연작들(1~6편)과 비교하면 초심으로 돌아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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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만 관객 넘은 ‘옵세션’
영화 '옵세션' 속 한 장면. [유니버셜 픽쳐스 코리아]
지난 2일 개봉한 ‘옵세션’도 3주째 기세가 등등하다. ‘레지던트 이블: 0번째 밤’ 개봉 첫날만 3위 자리를 내준 뒤 다시 탈환하며 7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인턴’ 개봉(16일) 직전까지는 ‘오디세이’에 이어 2위를 사수했다. 지난 5월 개봉한 ‘백룸’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외화 공포 영화가 될 거라 전망도 나온다. 100만 관객은 외화 공포물 중에선 2019년 ‘어스’ 이후 7년 만에 나온 흥행 수치다.
‘옵세션’은 연애의 어두운 이면을 공포스럽게 극대화한 이야기로, 스토리가 짜임새 있고 메시지의 소구력이 강해 지난 5월 북미 개봉 당시 MZ 세대에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젊은 신인 감독이 초저예산(10억원)으로 7000억원의 수익을 올린 작품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미국에서 스타워즈 시리즈인 ‘만달로리안과 그로구’도 제쳤다.
올해 ‘살목지’로 시작된 극장가 공포물 흥행에 대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불거진 영화계 침체의 여파라는 해석도 나온다. 저예산, 신인 배우로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장르라, 정통 호러물부터 인터넷 괴담까지 다양한 시도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얘기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살목지’ ‘백룸’ ‘옵세션’이 그렇듯 공포물은 신인 감독이 적은 예산과 새로운 시도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어 영화 침체기에 많은 시도가 이뤄진다”며 “‘레지던트 이블’의 경우, 신인은 아니지만 젊은 감독인 잭 크레거가 주인공이 스테이지를 깨고 넘어갈 때마다 점점 큰 총을 쓰게 하는 등 게임의 특징을 성공적으로 녹여내 좋은 연출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