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마크웨인 멀린 미 국토안보부 장관과 이민세관단속국(ICE) 관계자들이 ‘로튼 애플 작전’의 성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가운데, 체포된 이민자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로튼 애플 작전은 ICE가 7월 27일부터 8월 29일까지 뉴욕주 전역에서 벌인 대규모 이민 단속 작전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세계 각국과 비밀협정을 맺고 이민자들을 출신국이 아닌 제3국으로 대거 추방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민법상 본국 송환이 어려운 이들까지 내보내기 위해 ‘제3국 추방’을 해온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강경 이민정책을 한층 확대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1일(현지시간) 미 워싱턴포스트(WP)와 영국 가디언 등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탐사보도단체 ‘포비든 스토리즈’가 주도한 국제 공동취재팀은 6개월간 트럼프 행정부의 ‘제3국 추방’ 실태를 추적한 결과를 공개했다. 공동취재에는 WP와 가디언 등 24개 언론사가 참여했다.
취재 결과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1월 2기 출범 이후 2만5000명이 넘는 이민자들을 출신국이 아닌 제3국으로 추방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약 2만 명은 멕시코, 나머지 약 5000명은 아프리카·중남미·중앙아시아 등으로 추방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 워싱턴DC 포기보텀 지역에 위치한 미 국무부 청사 전경. AFP=연합뉴스
이 같은 대규모 제3국 추방의 중심에는 미 국무부 산하 ‘재이주국’이 있었다. 재이주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지난해 국무부 인구·난민·이주국(PRM) 산하에 신설한 조직이다. PRM이 난민 정착과 인도적 지원을 담당해온 것과 달리, 재이주국은 이민자의 자진 귀국과 제3국 추방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재이주국은 각국과 협상을 벌여 지금까지 35개국과 제3국 추방 협정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재정 지원을 이민자 수용 대가로 내세웠다. WP가 행정부 내부 문서를 확인한 결과 트럼프 행정부가 제3국 추방 협정을 성사시키기 위해 승인했거나 지원을 약속한 금액은 최소 4억1000만 달러(약 5700억원)에 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때도 이 같은 제3국 추방 협정을 추진했다. 당시에는 이민자를 넘겨 받는 국가가 인권 보호와 망명 절차 등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안전한 제3국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2기 행정부는 이를 대신해 ‘제3국 국민 약정(TCNA)’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상대국이 인권 보호와 망명 절차를 법적으로 보장하지 않아도, 미국과 외교문서를 통해 이민자를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면 추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2월 코스타리카와 파나마를 시작으로 멕시코·과테말라·엘살바도르 등으로 제3국 추방 대상국을 빠르게 늘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의료 정책과 관련한 발표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가 제3국 추방 확대를 추진한 것은 본국으로 돌려보낼 수 없는 이민자들까지 추방하기 위해서다. 미국 이민법에 따르면, 미국에서 최종 추방 명령을 받았더라도 본국에서 박해받을 가능성이 있으면 송환이 금지될 수 있다. 본국 정부가 자국민 인수를 거부해 송환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행정부 관계자들은 WP에 “제3국 추방은 강간·살인 등을 저지른 범죄자를 포함해 가장 추방하기 어려운 이민자들을 내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8일 미 연방항소법원은 이러한 제3국 추방 정책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추방 대상자에게 어느 나라로 보내지는지 충분히 알리지 않고, 해당 국가로 갈 경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소명할 기회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대법원에 상고할 전망이다. 국무부는 공동취재팀에 보낸 서면 답변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머무를 권리가 없는 사람들을 추방하기 위해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주의사당 앞에서 시민들이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날 ICE 단속 과정에서 베네수엘라 국적 배달원 윌버 라파엘 가르세스 페레스(28)가 총격을 받아 부상했다. AFP=연합뉴스
체류 자격이 없는 이민자를 제3국으로 보내는 방안을 추진하는 건 유럽연합(EU)도 마찬가지다. EU 이사회와 유럽의회는 지난 6월 제3국에 이 같은 ‘귀환 허브’를 둘 수 있도록 하는 규정에 잠정 합의했다. 이곳에 이민자를 정착시키거나, 다른 국가로 보내기 전 임시로 머물게 하는 방식이다.
귀환 허브를 받아들일 제3국에는 재정 지원 및 비자·무역 정책상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제3국과 별도의 협정을 맺어야 하며, 해당 국가는 강제송환 금지 원칙 등 국제 인권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이로 인해 서방 국가들이 자금과 외교적 영향력을 앞세워 이민자 수용과 추방의 책임을 제3국에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브 게디 국제엠네스티 유럽기구사무소장은 지난 2일 “이민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는 국가들에 그 책임을 떠넘기려는 노골적인 시도”라며 “구금과 추방을 외주화하거나 역외로 떠넘기는 잔혹한 인권의 블랙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이민자 과잉 진압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일 텍사스주 오스틴에서는 ICE 요원이 베네수엘라 국적 음식 배달원 윌버 라파엘 가르세스 페레스(28)에게 총격을 가해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다. 가르세스 페레스는 총알이 척추 가까이에 박힌 채 ICE 구금시설로 옮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ICE 측은 그가 단속을 피해 달아나던 중 총격이 발생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