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소설 『위험한 관계』는 수년 간 다양하게 변주됐다. 조선 배경으로 리메이크 된 드라마 스캔들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누군가를 유혹해 사랑에 빠뜨리고, 결국 파국에 이르는 게임. 지난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캔들’이 국내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원작에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원작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서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1782)로, 18세기 프랑스 귀족사회가 배경이다.
이야기 중심에는 한때 연인이었던 메르테유 후작부인과 발몽 자작이 있다. 사교계의 명사 메르테유 후작부인은 바람둥이 발몽 자작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자신의 또 다른 옛 연인 제르쿠르 백작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와 결혼할 세실 드 볼랑주를 유혹해달라는 것. 발몽 자작은 이를 너무 간단하다며 거절하고, 대신 정숙하기로 유명한 투르벨 부인을 유혹 상대로 지목한다.
1988년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이 만든 ‘위험한 관계’. [사진 워너브러더스]
출간 당시에도 파격적인 설정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이 이야기는 시대, 국가를 넘어 리메이크 되며 꾸준히 회자됐다. 1988년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이 만들고 글렌 클로스, 존 말코비치, 미셸 파이퍼가 메르테유 부인, 발몽, 투르벨 부인으로 출연한 영화 ‘위험한 관계’는 가장 원작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9년 제6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의상상·미술상 등을 수상했다.
이듬해인 1989년에는 밀로시 포먼 감독의 ‘발몽’이 제작됐다. 콜린 퍼스, 아네트 베닝이 각각 발몽과 메르테유 부인 역을 맡았다. 대부분 설정은 원작과 같지만 결말이 다르다. 세실은 발몽의 아이를 가진 상태로 제르쿠르 백작과 결혼하고, 투르벨 부인은 자신의 외도를 용서한 남편에게 돌아간다.
2022년 프랑스 영화 ‘위험한 관계’. [사진 넷플릭스]
1999년작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은 더욱 과감한 변주였다. 원작의 귀족들을 현대 미국의 부유한 고등학생들로 바꿔놓으면서 ‘유혹의 게임’이라는 핵심 구조만 남겼다. 2022년 공개된 프랑스 넷플릭스 영화 ‘위험한 관계’ 역시 배경을 현대의 비아리츠로 옮겨 10대들의 사랑과 유혹을 그렸다.
한국에서도 ‘위험한 관계’는 여러 차례 변주됐다. 이재용 감독의 2003년 영화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는 이야기를 조선시대로 옮겼다. 배용준이 발몽에 해당하는 조원을, 이미숙이 메르테유 후작부인에 해당하는 조씨 부인을 연기했다.
이밖에 2012년에는 허진호 감독이 원작의 무대를 1930년대 상하이로 옮긴 중국 영화 ‘위험한 관계’를 선보였다. 2018년엔 MBC에서 문가영·우도환이 출연한 드라마 ‘위대한 유혹자’가 방영됐다.
왜 이 이야기는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지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탄탄한 ‘러브 게임’의 구조다. 윤성은 평론가는 “원작에서 중요한 것은 18세기 프랑스라는 배경이 아닌 누군가를 유혹하고, 상대의 감정을 이용하고,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믿는 인물들이 결국 그 관계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마주하는 역설 그 자체”라며 “시대와 공간을 바꿔도 작동할 수 있는 이야기인 셈”이라고 말했다. 주인공인 메르테유 후작부인의 주체성도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김성신 평론가는 “발몽은 실행자일 뿐, 판을 설계하고 명령하고 주도하는 건 메르테유”라고 분석했다. 이어 “원작 소설은 서간체로 쓰여 전지적 화자가 없고, 등장 인물들이 각자 자기 사정을 각기 목소리로 말하기 때문에 여성의 모습이 대상화되지 않는다”며 “이 역시 현대에 메르테유가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조선 배경으로 리메이크 된 영화 스캔들. [사진 CJ E&M]
이번 넷플릭스 ‘스캔들’ 역시 이런 긴 리메이크의 계보 위에 놓인다. 손예진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은 드라마는 공개 직후 한국 넷플릭스 시청 수 1위에 올랐다. 다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조씨부인(손예진)이나 안희연(나나) 등 주요 캐릭터의 성격이 평면적으로 그려졌다” “이야기의 템포가 늘어진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