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해마다 오고 우리는 해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이란 무엇인가? 태어난 곳이고 어릴 적 자란 곳이다. 수구초심의 여우마저 끝내 돌아가려는 곳이며, 평안과 안락이 있는 곳이다.
서사시 『오뒷세이아』가 영화로 만들어져 천만 관객을 끌었다. 필름으로 재현한 영화 속 푸른 바다색은 인상적이었다. 『일리아드』가 전쟁에 나가 승리하는 이야기라면, 『오뒷세이아』는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짝을 이루는 두 이야기가 이토록 대등하게 써지고 오랫동안 회자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왜냐하면 뒷이야기를 주제 삼은 방대한 작품은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고향 떠난 존재
오디세우스의 귀향, 수행과 흡사
본래의 곳에서 참 나 찾을 수 있어
하이데거가 인간의 현존을 실향(失鄕)이라 하였듯, 귀향(歸鄕)의 모티프는 그 속에 지혜를 본질로서 포함할 수밖에 없다. 고향은 본래 있던 곳이며, 누구나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안고 있다. 본래의 곳으로 돌아갔을 때 그것이 나의 참된 모습이다. 이보다 더 지혜로운 일이 있겠는가?
이 서사시가 더욱 매력적인 점은 무엇보다 돌아가는 과정이 길고 험난했다는 점이다. 전쟁에 걸린 만큼의 시간이, 돌아오는 데 걸렸다. 작가 호메로스는 이 두 사건에 동일한 비중을 부여하였다.
둘째 오디세우스의 방랑 원인이 분노와 자만이었다는 점이다.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의 아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고 자신을 우티스(nobody)라고 말한다. 허나 탈출하는 배에서 자신의 부하들을 잡아먹은 거인에게 분노를 참지 못해 자신의 본명을 밝힌다. 이것이 오디세우스로 하여금 길을 잃게 했고 눈물겨운 기나긴 역경의 시작이었다.
셋째 그 뒤 많은 부하들을 잃고 사자(死者)와의 문답에서 길을 찾는다. 삶이 죽음에 길을 묻는 것은 죽음이 삶의 종착지이기 때문이다. 떠도는 수많은 전우의 망령들을 보고 “저게 우리의 운명인가요?”라고 부하들이 절규한다.
넷째 그 노정이 유혹과 인내 자체였다. 식탐의 유혹, 안락과 불사(不死)의 유혹, 미녀의 유혹, 아름다운 노래의 유혹,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굶주림 앞에서의 굴복 등은 깊은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여신 키르케는 식탐을 참지 못해 돼지가 된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두고 “저것들은 본래 돼지였어. 인간의 탈을 씌워주마”라고 한다.
반쯤 죽은 채 오기기아섬에 떠밀려온 오디세우스를 불멸의 여신 칼립소가 치료하고, 먹여주고, 재워준다. 그 안락함과 아름다움, 불사(不死)를 떨치고 다시 고향 갈 마음을 일으키는 데 7년이 걸린다.
세이렌의 감미로움을 영화의 대사는 “가장 절실히 원하는 건 가장 가질 수 없는 것이고, 가장 가질 수 없는 건 이미 가졌다가 잃어버린 것이란 속삭임”이라 표현한다. 선가(禪家)의 가르침은 “제발 남 따라가지 말라” 한다. 소리 따라가지 말라는 말이다.
굶주림의 위협에 굴복하여 태양신의 소를 잡아먹는 장면은 신념을 위해 죽겠느냐 생존을 위해 굴복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이다. 신념을 위해 죽고자 하면 필히 살 것이지만 그것은 어렵다. 약속을 버리고 생존을 위해 굴복한 부하들은 전멸했다.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20년 전 오디세우스가 아니다. “더 참혹한 일도 넌 견뎌냈으니”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인다. 오디세우스의 뜻이 분노하는 자다. 분노하는 자가 잘 참는 자가 된 것이다.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신들과도 대결하려 한 오디세우스는 검은 재 밑에 붉은 숯불을 감추어 생명의 불씨를 지키듯, 걸인(乞人) 즉 우티스가 되어 고향 이타카성에 도착한다. “대결하려 하지 말고 통제하려고 하지 마. 믿음을 갖고 자신을 던져”라는 칼립소의 조언대로 자만을 극복하고 아상(我相)을 누른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선(禪) 수행자가 자신의 본성을 찾아 나서는 것과 유사하다. 부처님의 법은 생사의 들판을 넘고 번뇌의 바다를 건너 깨달음이라는 고향에 도달하여 열반의 언덕에 오르게 한다. 조선 초 함허 스님(1376~1433)도 “가고 가면 반드시 고향에 돌아갈 날 있으리라” 하였다. 오디세우스처럼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처음의 신념을 버리지 않으며 온갖 역경을 참아내면 추석날 고향길에 눈을 가득 채우는 가을 산들이 모두 고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