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를 하지 않는 검사는 상상해본 적도 없다”면서 또 한 검사가 사직서를 냈다는 말에 다른 검사를 떠올렸다. 사직서를 냈다가 수사하겠다며 철회한 이다.
서현욱 부산고검 창원지부 검사(사법연수원 35기)다. 그에겐 ‘윤석열 사단’이란 꼬리표가 달려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인사청문 준비팀의 일원(문무일 총장 때도 했다)이었고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등을 맡았으니 도리 없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감찰을 지시한, 지난해 11월 이화영 재판에서 검찰이 재판부 기피신청 의사를 밝히고 퇴정한 건과 관련해 징계 절차 중이기도 하다. 그가 공판검사에게 “기피신청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밝힌 게 이유인데 그는 지휘부에 그 의견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수장 없이 중수청·공소청 출범
공수처 만든 실력인데 다를까
‘수사 검사’ 없는 세상이 두렵다
그 역시 사의를 밝혔다. 올 1월인데, 한 달 만에 대검이 “진상조사 중”이라고 입장을 바꿔 사직절차가 중지됐다. 그러다 한 사건을 만났다. 1심에서 무죄 선고된 청산염 살인 사건이다. 오늘의 소재다.
2019년 800억원 자산가가 교통사고 때 숨졌는데 혈중에서 청산염이 나왔다. 사고사가 아닌 살인이었다. 예비 며느리가 기소됐고 1심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가 마신 것으로 보이는 청산염이 든 생수통이 도중에 사라졌고 피고인의 DNA가 나온 비닐팩의 증거능력은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예비 며느리라 법적 상속권이 없어 직접적·경제적 이득이 없다”고 봤다.
서 검사는 항소심 첫 재판 이후 사직철회서를 제출했다. 이 사건의 진실 규명이 검사로서의 마지막 소명이라고 여겼다고 했다. 사건 해결 뒤 사직서를 내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후 세 차례 보완수사요구를 했고 새로운 증인도 찾아냈다고 했다. 그와 통화했다.
-재판은 어찌 되나.
“오는 30일 증거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그 뒤 증인신문을 하게 된다. 피고인은 청산가리와 관련된 일을 해본 적 없다지만 있다는 걸 입증하겠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현안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DNA 증거는 왜 못 쓰게 됐나.
“압수수색할 때 경찰이 비닐장갑 없이 가, 현장에서 비닐장갑을 달라고 했는데 갖다준 사람이 피고인이다. 피고인도 (현장에서) 여러 개를 만진 듯하다. 청산염을 감싼 비닐팩에서 피고인의 DNA가 나왔는데 경찰이 통에서 비닐팩을 꺼낼 때 피고인이 준 비닐장갑을 끼고 있었다. 법원에선 조금의 오염 가능성이 있어도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증거 능력을) 주장할 수 없을 것 같다.”
“새로운 증거가 많이 준비돼 있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는 서 검사는 그러나 최근 “사의를 밝히지 않아서 징계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재판을 위해 사의를 미뤘는데 사의를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게 생겼다. 블랙코미디였다.
서 검사의 얘기를 길게 한 건 검찰이, 설령 꼬리표가 붙은 검찰도 일반 범죄를 못지않게 다룬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진실 규명에 사명감을 느끼기도 하고, 경찰이 놓친 걸 보강도 한다. 검사가 하는 일의 90~95%가 일반 사건이란 얘기도 있지 않나.
이제 9일 후면 ‘검찰청’은 사라진다. 이 대통령은 최근 “검사는 아예 수사를 못 한다. 사후조치들을 통해서 불가역적으로 검사가 다시는 수사에 관여할 수 없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사실 민주당 진영은 ‘검찰개혁’을 내걸고 수사총량을 덜어내 왔다. “검찰이 숱한 문제를 일으킨 것은 특수부 등 대규모 인지수사 부서를 통해 사실상 경찰처럼 나서면서 동시에 기소권도 행사했기 때문”(금태섭)이란 진단과 함께 검찰의 직접수사를 축소하고 특수부를 폐지하면 된다는 ‘핵심 처방’이 있었지만 여권은 외면했다. 그러곤 만든 게 공수처다. 이젠 중수청·공소청을 덧댄다. 공수처를 만든 실력을 보면 중수청·공소청이 제대로 작동할지 의문이다. 당장 수장(首長)도 없다. 장차 '검사'로 불리지만 공소청의 소추 담당자가 된 이들이 이전 검사처럼 기여할 수 있을까. ‘수사 못 하는 검사’ 시대, 진정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