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비행기 기름 넣어줘도 제재…美, 바닷길 이어 하늘길까지 봉쇄
중앙일보
2026.09.22 17:42
21일 이란 테헤란의 엥헬라브 광장에 '악마는 페르시아만에서 침몰될 것이다'는 글자가 새겨진 반미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이 전쟁 상대국인 이란을 상대로 해상 운송에 이어 항공로까지 사실상 봉쇄하는 고강도 경제 압박에 나섰다. 이란 항공사에 연료나 착륙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 기업까지 제재하는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을 통해 이란의 대외 교통망을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22일(현지시간)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23일부터 이란 항공사에 연료 보급과 착륙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외국 기업을 제재한다.
미 재무부는 이란 최대 민간 항공사인 마한항공의 대리인들을 제재 명단에 올린 데 이어, 규모가 작은 이란 항공사 27곳도 새롭게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이란 항공기가 착륙하면 연료나 착륙 서비스를 제공해서는 안 되고 항공권도 판매하면 안 된다”며 이를 어길 경우 “달러 체계에서 퇴출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미국이 이미 시행 중인 대이란 해상 운송 봉쇄를 항공 분야로 확대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이란이 민간 항공편을 이용해 무기와 전투원을 수송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은 이란 항구를 통한 해상 교역을 막아 화물과 에너지 수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란은 상당수 화물 운송을 육로로 돌렸지만, 육로에서도 물류 병목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8일 이란 테헤란 혁명광장에서 열린 '이란을 위한 희생' 행진에서 시아파 성직자들이 소총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싱크탱크 근동정책연구소의 매슈 레빗 선임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각국이 미국 제재에 동참할 경우 “이란 항공사가 국내선 전용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항공로가 막히면 고물가와 리알화 가치 급락, 필수물자 부족에 시달리는 이란 경제의 부담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란 항공사들은 의약품과 자동차 부품 등 주요 물품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데 활용돼왔고, 이란 국민의 해외 이동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제재 영향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란 민간항공기구는 테헤란에서 이라크 바그다드와 오만 무스카트로 향하는 모든 항공편이 23일 0시를 기해 취소됐다고 밝혔다.
아제르바이잔은 모든 이란 항공사의 자국 공항 이용을 금지했고, 조지아에서도 지난 21일부터 이란행 항공편 운항이 중단됐다.
마한항공 역시 해당 국가들의 요청에 따라 튀르키예와 오만행 항공편을 중단한다고 고객들에게 통보했다.
다만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등 일부 노선은 22일 현재까지 운항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관련 국가와 기업들이 미국의 제재 위험을 감수하면서 운항을 계속할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있는 국가는 이란의 주요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다.
항공기 추적 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에 따르면 마한항공은 22일 늦게까지 러시아 모스크바와 중국 광저우 노선을 운항했다.
중국 외교부는 “상호 존중과 상호 이익을 토대로 한 중국과 이란의 우호적 교류와 협력은 정당하고 합법적”이라며 미국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레빗 연구원은 “중국과 러시아, 이란은 미국의 국제 제재 체계, 특히 일방적 제재를 약화시키기 위해 가능한 조치를 취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바닷길에 이어 하늘길까지 옥죄면서 이란 경제의 고립이 한층 심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향후 중국과 러시아가 이란의 항공·물류망을 어느 정도 떠받칠지가 제재 실효성을 가를 주요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재홍([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