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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배상 ‘시효 벽’ 허물었다…과거사 피해자, 패소 확정돼도 재소송 가능

중앙일보

2026.09.22 20:55 2026.09.2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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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뉴시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뉴시스


과거사 사건 피해자가 국가배상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이미 패소 확정판결을 받았더라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다시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개정 과거사정리법 시행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피해자라면, 종전 소송에서 시효 완성을 이유로 패소했더라도 재차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봤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는 숨진 A씨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한국전쟁 직전인 1949년 경찰의 좌익세력 소탕작전 과정에서 별도의 재판 절차 없이 총살됐다.

유족은 2012년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패소가 확정됐다.

당시 법원은 국가의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 지급 의무 자체는 인정했지만,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됐다고 판단했다.

국가재정법상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불법행위가 발생한 때부터 5년이다.

이후 진실화해위는 2023년 8월 경북 영덕 지역에서 군경이 좌익활동이나 빨치산 협조 혐의 등을 이유로 A씨를 포함한 민간인 20명을 적법절차 없이 살해한 행위가 불법이었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유족은 이 결정을 근거로 국가를 상대로 다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과거 확정된 패소 판결의 ‘기판력’이 새로운 소송에도 미치는지 여부였다.

기판력은 확정판결에서 판단된 내용에 대해 이후 다른 소송에서 다시 다투지 못하도록 하는 효력을 말한다.

1심과 2심은 기존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여전히 인정된다고 보고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올해 2월 26일 시행된 개정 과거사정리법을 근거로 판단을 뒤집었다.

개정법은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사건으로 발생한 피해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국가재정법상 5년, 민법상 10년의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부칙에서는 법 시행 전에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사람도 시행일로부터 3년 이내에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는 과거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이미 패소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도 포함된다.

대법원은 해당 조항이 국가가 과거 반민주적·반인권적 행위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던 점을 반영해 시효 적용을 배제하거나 국가가 스스로 시효이익을 포기하도록 한 취지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개정법 시행 전에 진실규명 결정이 있었다면, 과거 소송에서 시효 완성을 이유로 패소가 확정됐더라도 개정법 시행일로부터 3년 안에 다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대법원은 개정법 시행 전에 이미 두 번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던 경우에도 같은 법리가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측은 이번 판결에 대해 개정 과거사정리법상 소멸시효 특례가 법 시행 당시 이미 진행 중인 소송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처음으로 명확히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정재홍([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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