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장군의 가문은 스코틀랜드의 이민으로서 본디 성(姓)이 아더(Arthur)였는데, 뿌리의 자긍심을 잇고자 전통에 따라 앞에 Mac을 붙여 MacArthur가 되었다. 이민 세대였던 할아버지는 웨슬리안대학 출신의 변호사로, 정계에 투신하여 위스콘신주 주지사에 당선되었으나 부정선거로 5일 만에 당선 무효가 되었다.
아버지는 일찍이 군문에 들어가 인디언 토벌 작전에 공을 세우고 장군으로 승진하여 필리핀 총독을 지냈다. 그는 제1차대전 전승 축하의 연대 모임에 참석했다가 심장마비로 현장에서 사망했는데, 그의 부관 파슨스도 충격을 받고 함께 세상을 떠났다.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Never to tattle)”는 것이 가훈이었다. 그렇다면 여자는 입이 가벼워도 된다는 뜻인가? 그건 아니다. 그 집안에는 딸이 드물었다.
제2차 대전 당시 뒷날 각기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가 전속부관이었고, 트루먼은 대위여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것이 맥아더의 처신에 충격을 주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6월 29일, 급히 한국으로 날아와 오산비행장에 내려서 “한국이 공산화되면 일본은 어찌 되나?(And what of Japan?)”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망나니를 쥐어패고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온다(Beat the bully, and bring the boys home)”고 생각하고 병력은 2개 사단이면 충분하며 추수감사절 이전에 전쟁은 끝낸다는 심정으로 인천 상륙 작전을 수행했다.
당시 작전의 성공률이 매우 낮다고 참모들이 조언하자, 그럴수록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때 곁에 있던 참모 본드(Niles Bond)는 “장군을 설득하는 것은 교황에게 교리 공부를 시키기보다 어려웠다”는 회고록을 남겼다. 76년 전 오늘, 그는 시가전을 벌이며 경인가도로 진군하고 있었다. 서울 수복 76년의 기념일(9월 28일)을 앞두고 문득 그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