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으로 두 팔이 없는 존 파피는 평생 왼발로 운전대를 잡고 오른발로 페달을 밟아왔다. 지난 15일 테슬라는 그가 운전자 감독형 FSD를 켜고 800㎞를 넘게 달려 딸의 집을 다녀오는 영상을 공개했다. 물론 마케팅이지만, 800㎞의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1일 자체 인공지능 ‘아트리아’를 탑재한 차량을 2029년 하반기에 양산한다고 밝혔다. 2028년 엔비디아 기술을 먼저 적용하고, 이후 자체 기술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기업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국가의 시계다. 기술은 달려가는데 허가와 실증의 문이 닫혀 있다면, 국가는 기업의 발목을 잡게 된다.
그 비용은 이동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교통약자는 1586만명, 국민 세 명 중 한 명이다.
수도권에서 막차는 배차 간격의 문제다. 지방에서 밤 아홉시는 세상이 닫히는 시각이다. 수도권에서 자율주행은 편의지만, 지방에서는 상수도에 가깝다. 없으면 생활 자체가 멈춘다.
우리는 지방소멸을 일자리 문제로 인식한다. 하지만 일자리를 찾기 전에 밤에 돌아올 방법이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지방소멸 역전의 첫 단추는 산업단지가 아니라 막차다.
규제 완화와 안전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안전기준은 지켜야 하지만, 안전을 확인할 기회인 실증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웨이모는 2026년 3월까지 2억2000만 마일이 넘는 완전자율주행 데이터를 쌓았다. 회사 분석에 따르면 인간 운전자보다 중상·사망 사고는 94%, 보행자 부상 사고는 93% 적었다. 특정 지역과 조건에 한정된 자료지만, 자율주행이 반드시 인간보다 위험하다는 가정은 흔들린다.
더 중요한 것은 위험의 기준이다. 자율주행의 잠재적 사고는 걱정하면서, 교통수단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현재의 위험은 외면한다. 밤 9시 이후 이동수단이 사라지는 것도 안전의 문제다.
고려는 중국에서 가마와 유약을 들여왔지만, 고려청자의 무늬까지 수입하지는 않았다. 자율주행도 마찬가지다. 칩과 모델은 사 올 수 있다. 그러나 고령자와 장애인, 지방의 막차 문제를 어떻게 풀지는 우리가 정해야 한다.
그러니 순서를 바꾸자. 산업을 키운 뒤 언젠가 이동의 자유를 주겠다고 하지 말자. 이동을 먼저 풀어 산업을 얻자.
규제 완화는 기업을 위한 특혜가 아니다. 밤 9시면 닫히는 읍내에 다시 길을 여는 일이다. 자율주행이 바꿔야 할 것은 운전 방식이 아니라 이동의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