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선생의 부고를 접했다. 언제나 담백한 조언으로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줬던 이근후 선생이 지난 2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죽음이 두렵다”면서도 “그토록 두려운 죽음 덕분에 하루하루가 더 새롭고 감사하다”고 했던 그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바랐던 그의 소망대로 2남 2녀 가족들과 함께 모여 사는 서울 구기동 집에서 잠들듯 평안히 눈을 감았다.
21일 별세 정신과 의사 이근후
한지붕 밑 가족 3대 상호불간섭
최선 대신 소소한 즐거움 추구
"존경받는 부모? 그냥 부모면 돼"
지난 21일 별세한 이근후 선생의 지난해 5월 모습. 청력이 떨어져 헤드셋과 마이크를 이용해 대화를 나눠야 했지만,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삶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김경록 기자
“자녀와의 행복, 간섭하면 다 놓쳐”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난 선생은 경북대 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가 됐다. 50년간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가 15만 명이다. 정신과 폐쇄병동을 개방형으로 만들고 국내 최초로 사이코드라마 치료법을 시도하는 등 현역 의사 시절에도 많은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의 인생 하이라이트는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2013년 출간해 60만부 넘게 팔린 책 제목이기도 하다)고 했던 노년기다. 1995년 아내인 사회학자 이동원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함께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해 연구·상담·교육 활동을 펼쳤고, 20여권의 책을 일흔 넘어 펴냈다. 2011년엔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수석 졸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력을 거의 잃어버린 말년에도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구술 작업으로 책을 썼고, 침대에 기대앉아 손님을 맞으며 재미있게 살았다.
그의 가족 3대가 2002년부터 25년째 함께 꾸려오고 있는 대가족 시스템은 가족 해체와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연결된 가족 공동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2012년, 대가족 생활 10년을 맞은 그의 가족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선생 부부와 2남 2녀 자녀 가족이 함께 사는 북한산 자락 4층집으로 찾아갔다. 선생의 퇴직금으로 산 땅에 4남매가 돈을 모아 다섯 가구가 각각 독립된 주거 공간을 갖도록 지은 집이었다.
흔쾌히 인터뷰를 승낙한 선생에게 가족이 모두 모인 모습을 촬영하게 해달라고 미리 청해뒀었다. 가족들 의사를 물어보겠다던 선생의 말투가 너무나 선선해서 쉽사리 성사될 줄 알았다. 하지만 4남매 자녀들과 사위·며느리들이 모두 거절했다고 했다. 그 말을 전하는 선생의 표정에서 난처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구도 누구에게 억지로 맞추지 않는 가족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손자·손녀 세 명만 그날 사진 촬영에 동참했다.
그렇게 너그럽고 유연한 태도는 선생이 자녀들과 한 지붕 아래에서 사반세기를 살아낸 비결이다. 가족이 모여 살기로 하면서 선생이 자녀들에게 강조한 것은 ‘상호 불간섭주의’였다. 그날 선생은 “자녀들과 공유하는 부분이 10%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한데, 많은 부모들이 나머지 90% 영역까지 간섭하려다 10%도 공유하지 못하고 산다”고 말했다.
“자신에게도, 부모에게도 너그러워야”
‘불간섭’이 가능하려면 완벽을 추구하는 욕심부터 내려놔야 한다. 지난 6월 출간한 책 『아버지, 당신에게 인생을 묻습니다』에서 선생은 자녀와의 관계마저도 “너무 좋지도, 너무 싫지도 않은 딱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원망받는 부모가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반드시 존경받는 부모가 될 이유도 없으니 ‘그냥 부모’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선생의 너그러움은 자녀쪽으만 향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도, 또 부모에게도 너그럽기를 권했다. 그는 우월감과 열등감까지 모두 건강한 감정으로 인정해줬다. 우월한 마음이 들면 자축하면서 즐기면 되고, 열등한 마음이 생기면 스스로 위로해주면서 분발하면 된다고 했다. 부모를 향한 너그러움은 더 무게가 있다. 부모의 세월을 헤아려보고 이해하는 것, 그래서 부모에게서 받은 마음속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것을 성숙과 성장의 증거로 봤다.
생전의 선생은 ‘최선’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내가 가진 100을 다 써버리고 나면 씨앗을 먹어치운 농부처럼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추구한 것은 사소한 즐거움이다. 애면글면 경쟁하며 최고가 되려는 노력을 조금 덜어내고 느슨해져야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살아보니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다.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사소한 즐거움을 잃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2019)
2012년 인터뷰 때 선생은 대가족 예찬론을 펼쳤다. 당시 기사엔 미처 못 담았던 내용을 이제서야 옮겨보면 이렇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1980)을 보면 미래의 가족이란 말이 나와요. 핵가족에서 확대가족으로 변한다는 얘기죠. 예전 농경사회에선 노동력을 많이 갖고 있는 집이 부자니까 대가족이 유리했죠. 미래사회에선 정보력이 중요해요. 한집에 살아보니까 다양한 정보가 모여요. 미래사회에 살기 유리한 거죠.”
대가족이 미래의 가족 형태가 될 것이란 앨빈 토플러의 전망은 빗나갔다. 대가족의 이점을 누리기에 우리의 너그러움이 모자란 탓이다.
마침 가족 갈등이 최고조로 불거진다는 명절이다. 선생의 조언대로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여유가 가장 필요한 때다. 선생의 영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