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USS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공모함에 탑승한 장병들이 지난 7월 휴일에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변기 막힌 화장실, 곰팡이 낀 샤워실, 오염된 물, 겹겹이 쌓인 빨래….
지난달 초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한 ‘미국 해군의 자부심’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의 실상이다. 지난해 11월 이란전쟁을 치르러 중동으로 출항한 뒤 9개월 넘게 바다에 머무르다 보니 승조원의 고충이 한계에 다다랐다. 미 해군 장병은 한국의 추석 명절 같은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 독립기념일 같은 공휴일을 어떻게 보낼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기관실과 레이더·통신·당직 등 24시간 작전 체계는 휴일에도 그대로 유지한다. 다만 특식과 각종 이벤트로 휴일 분위기를 살려 장기 항해에 따른 피로와 향수를 달랜다. 세계 최대 규모 해군답게 규모가 큰 게 특징이다.
휴일에 가장 신경 쓰는 건 음식이다.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보급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격언은 휴일을 맞은 함정 식탁에서 가장 와닿는 말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전쟁 당시 아라비아 해에 배치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항공모함에서 추수감사절 풍경을 취재했다.
당시 함정 주방에서는 칠면조 고기 3500파운드(약 1.6t), 햄 2000파운드, 소고기 립 아이 2500파운드, 파이 650개를 준비했다. 급식 담당 승조원 약 250명이 5500명분 특식을 만들었다. 함장을 비롯한 고위 장교가 직접 배식하는 것도 미 해군 함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휴 풍경이다.
식사 뒤에는 격납고나 휴게실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으로 미식축구(NFL) 경기를 보기도 한다. ‘파이 빨리 먹기 대회’ 같은 행사도 열린다. 평소에는 전투기·헬기가 들어서는 거대한 공간이 잠시나마 축제장으로 바뀌는 셈이다.
독립기념일은 분위기가 더 미국적이다. (작전 상황이 허락하면) 미 해군이 ‘스틸 비치(steel beach·철판 해변)’라고 부르는 함상 피크닉이 열린다. 모래사장 대신 갑판 위에 탁자와 간이 놀이 시설을 마련한다. 햄버거와 핫도그를 굽고, 음악을 듣는다. 수개월째 땅을 밟지 못한 승조원에게 주는 선상 휴가다. 성탄절에는 함정에 트리 장식이 등장한다. 산타클로스로 분장한 승조원이 돌아다닌다. 칠면조와 햄, 스테이크 같은 특식도 식탁에 오른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휴일을 온전히 대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추수감사절 링컨호에는 가족에게, 연인에게 전화하려는 승조원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아내와 통화를 마친 한 승조원은 WP에 “오히려 내가 놓치는 것들이 떠올라 하루를 견디기가 더 힘들었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