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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피아니스트]비인간적 시간의 쓰린 기억

“언젠가는 폴란드 역사의 고통스런 장면을 영화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회고록의 첫 장을 읽는 순간 이것이라는 느낌이 왔다…나는 바르샤바 공습에서 살아남았다. 어렸을 때의 그 기억을 재현해 내고 싶었다…될 수 있는 대로 사실에 근접하되 할리우드 식으로 과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피아니스트’(The Pianist)에 대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고백이다.

‘피아니스트’는 2시간 28분의 상영시간 동안 유대계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스필만의 경험과 역시 유대계 폴란드인 폴란스키 감독의 기억을 사실적으로 따라간다.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 스필만(에이드리언 브로디)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라디오 방송국에 폭탄이 떨어지면서 시작된 영화는 독일군의 진주와 유대인 학살을 장엄하게 이어간다.

폴란스키 감독은 자신의 의도대로 ‘피아니스트’를 할리우드 방식과는 거리를 둔다. 나치와 유대인의 관계를 굳이 이분법으로 나누려 애쓰지 않는다.

나치는 유대인을 집단 거주지인 게토로 몰아넣으면서 같은 유대인으로 치안대를 구성한다. 유대인이 유대인을 아우슈비치로 실어 나르는 모습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피아니스트’는 낡은 흑백 사진 같은 먼 옛날의 기억을 재현한 것에 가깝다. 할리우드 식으로 당장 눈 앞에 일어난 것같은 생동감을 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 때문에 분노나 저주 같은 격한 감정이나, 그런 감정을 일으키려는 의도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영화의 저변을 흐르는 정서는 휴머니즘이 사라진 살풍경의 기억이다. 유대인을 게토에 몰아넣고 담으로 외부세계와 단절하는 것으로 시작된 비인간의 기억은 시궁창과 널부러진 시체와 파괴된 도시로 표현된다. 만약 비인간의 시간에 항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피아노일 것이다. 영화에서 스필만의 피아노 연주는 그 것 만으로 나치의 비인간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항변이다.

‘피아니스트’는 폴란스키 영화 가운데 가장 쉽고 재미있다. 사실적이고 강렬하게 재현된 나치의 공격과 레지스탕스의 반격 등 전투장면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영화의 대중성을 높인다.

27일 개봉. 등급 R.



안유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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