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부문 가작]춤을 추는 그대(3)
“당신 나으면 한국에 가서 애들 다 불러 가지고 그렇게 하지 뭐~”
“그래 꼭 그러자.” 지수는 힘없이 말한다.
기태는 그 동안 힘들게 참아왔던 눈물이 물 항아리가 깨진 것처럼 쏟아져 나왔다.
지수가 말없이 기태의 눈물을 닦는다.
먹물처럼 까만 밤하늘에는 백설기를 뿌려놓은 듯 별들이 막무가내로 놓여있다.
문득 발을 헛 딛은 별이 그들 앞으로 툭, 떨어졌다.
“여보, 일어나야지.” 기태는 마치 귀에 대고 속삭이듯이 말을 했다. 치료를 받는 동안 기태는 밤을 새워 고통스러워하다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드는 지수를 깨우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어떤 날에는 밤새 그러다가 깨어나지 않을까 봐 가슴에 귀를 대보기도 했다. 아내는 유난히 잠귀가 밝았다.
언젠가는 기태가 화장실에 갈려고 일어나자 “기태씨, 싱크 물 좀 잘 잠가줄래?” 기태는 너무나 분명하게 말하는 지수의 목소리에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 했었다. 마치 잠 안자고 자신이 화장실 가기를 기다렸던 사람 같았다. 그래서 가 본 싱크대에는 물기조차 없었다. 돌아서려고 하자 등뒤에서 똑, 소리가 났다. 이분 간격으로나 떨어질까? 똑, 떨어졌다. 말랐다가, 똑,... 그렇게 잠귀 밝은 아내가 이제는 몇 번을 불러도 깨지 않는다. 오늘은 특히 곤하게 자는 아내를 깨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나아질만하면 수술이나 검사 혹은 또 다른 치료가 지겨운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기를 일 년이 되어간다.
오늘은 말만으로도 신경이 한 곳으로 몰리는 Blood stem cell transplantation(골수 이식) 과 High dose chemotherapy(강도 높은 화학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는 날이다.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뙤약볕 아래에 얼마나 오래 있어야 얼굴이 이렇게 까매질까? 지수의 얼굴은 꼬마들이 장난하다 흙을 뒤집어 쓴 것처럼 까만해졌다.
“기태씨!”
“그래, 오늘부터야.”
아내는 장난하다 야단 맞은 아이처럼 기태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줄을 그어놓은 듯한 반듯한 길옆으로 야자수들이 큰 잎사귀들을 정신없이 흔들어 대고 있다. 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세상은 아름다워 지는지 모르겠다고 지수는 생각했다.
며칠 전 가족이 가까운 공원에 갔던 날도 오늘 같은 날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비오듯 쏟아져 내리고, 잔걸음으로 아이들을 쫓는 기태의 얼굴이 노을처럼 붉어져, 지수는 납작하게 엎드린 풀꽃들 위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알지 못했다.
등뒤로 아이가 뛰어와 두 눈을 가릴 때까지.
멀리 병원이 보인다. 왜 병원들은 모두 하얀색일까? 하지만 간호사들의 옷은 여러 가지 꽃들이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누군가 모든 것이 너무 하얗지 않느냐고 얘기했을까? 언젠가는 주검을 덮는 하얀 시트조차 분홍색에 나팔꽃이 피어있는 것으로 바뀔지 모르겠다고 지수는 생각했다.
골수는 새로운 세포들, 즉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Immature(혹은 Stem,줄기)세포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 몸에 흐르는 피에도 줄기세포가 있다고 했다. 골수에 있는 것보다는 소량이지만 몇 번에 걸쳐 피를 뽑아 기계를 통해 세포의 종류대로 분리한 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High dose therapy가 끝난 후에 다시 혈관을 통해 몸에 투여하는 치료 방법, Blood Stem cell Transplantation 이라고 했다. 이 치료방법이 시작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Stem cell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뼈 쪽보다는 고통이 적어 환자들이 이 방법을 많이 택하고 있다고 했다. 골수 이식을 하는 병동은 대서양을 옆에 두고 있어서 로비에 들어서자 바닷가를 거니는 것 같았다. 양옆으로 고급스러운 소파가 놓여있고 교회만큼이나 높은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대낮인데도 불을 밝히고 있었다. 미국은 병원조차 이틀 정도 머물고 떠났으면 하는 별 넷 정도의 호텔 같았다. 하지만 장례식의 화려함이나 리무진으로 마지막 길을 보내는 이곳 사람들의 정서로 보아 불안한 마음은 더 하였다. 마치 사탕 주며 머리 쓰다듬다가 따귀라도 때릴 것처럼. 두려움을 한숨으로 내 몰 때 복도 끝에 굳게 닫힌, 철문을 한 겹 벗긴 듯한 문은 부술 수 없는 두께로 내몰려던 호흡을 잡았다.
그 문은 바깥 세상의 아름다움과는 무관한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었다.
열리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이던 문이 간호원의 가벼운 손동작 하나로 입을 크게 벌렸다. 관련된 의사와 간호사 이외에는 출입이 통제 된 곳이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기태가 소중한 것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벗어 놓은 옷을 개어 옷장에 넣는 모습을 보자 이런, 결혼 전 여관을 드나들던 생각이 나서 지수는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삼켰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한심스러워하며 고양이 수염처럼 뻣뻣하게 풀이 먹여진 침대보를 들추고 누웠다.
그림자처럼 스며들었는지 자그만 귀에 좁쌀 만한 루비를 살짝 묻혀 놓은 듯한 귀걸이를 한 간호사가 어느새 옆에 와 있었다. 입에 체온계를 물리며 동그란 눈을 네 번쯤 깜박이더니 손목을 잡고 맥박을 셌다. 지수는 그녀의 입이 붕어처럼 씰룩거리는 것을 바라보다가 안방처럼 벽지가 발라진 천장이 집처럼 아늑하게 느껴지자 문득 이곳이 병원인지 집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천장에는 백합꽃이 피어 있는 띠가 사방을 두르고 있었다. 지수 앞쪽으로 스무 송이, 왼 쪽으로 스물 두 송이, 언 뜻 보면 정방형 같았는데 직사각형 병실이었다.
갑자기 백합꽃들이 네 구석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지수는 어디에 누워있는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나쁜 꿈을 꾸고 난 것처럼 정신은 혼미해서 자신이 죽어서 다른 세계로 온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헛된 귀 울음인지, 밖에서는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문을 부수고 들어올 것처럼 거세게 들리더니 언제 나갔었는지 간호사가 다시 들어왔다. 이러기를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꿈을 꾼 것도 아니었는데 소리를 질러서 옆에 있던 간호사가 놀라기도 하고, 어느 땐 꿈속에 음식물을 토하고 깨어 보면, 옆에 두었던 통 속에 토사물이 들어 있기도 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오감이 훌떡 훌떡 미친년 널뛰듯 했다.
금방이라도 아이들이 문을 열고 들어 설 것만 같아 지수는 앉은 채로 문 쪽만 바라보고 있다. 내일부터 있을 항암 치료는 거의 준비가 되었고, 오후에는 가족들이 방문할 수 있다고 해서 기태는 아이들을 데리러 나간지 두 시간이 되어간다.
슬그머니 문이 열리더니 아이 둘이 꽃을 들고 서있다. 뒤에는 커다란 풍선을 들은 기태가 풍선만큼이나 큰 입을 벌리고 웃는다.
“아! 나의 사랑하는 가족.” 지수의 가슴 안에서 나비가 춤을 춘다.
“ I LOVE MOM ” 풍선이 병실을 가득 메웠다.
“엄마, 엄마” 민수가 침대 곁으로 뛰어오자 아이의 샴푸 냄새가 쫓아왔다.
“우리 민수 예쁜 옷 입었네, 학교 잘 갔다왔어?”
아이의 뺨이 꽃잎처럼 부드럽다.
“엄마 몇 밤 자고 집에와? 엄마 많이 아파?”
“민수야, 엄마 집에 갈 때까지 오빠하고 사이좋게 놀아야해, 밥도 많이 먹고.”
아이의 눈이 붉어지더니 지수의 가슴에 안긴다. “그래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민수 뒤에 서있던 민구와 눈이 마주쳤다. 아! 우리 민구, 지수의 빈 가슴에 찬바람이 불어온다. 지수를 바라보는 민구의 입이 씰룩거린다.
“민구야, 엄마한테 와봐.”
“엄마 많이 아파요? 선생님이 그랬어요. 내가 3학년 되면 엄마도 선생님처럼 안 아프데요.” 지수는 멀미가 날 것처럼 가슴이 출렁거렸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었는데, 민구를 보자 며칠 전에 기태가 한말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
민구가 목욕탕에서 나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안나와서 들어가 보니 팬티를 빨고 있었다. 지수와 민구만 아는 비밀이었다. 민구는 어렸을 때부터 변을 참는 버릇이 있었다.
자라면서도 고쳐지지 않아 가끔씩 팬티에 대변이 묻은 것을 지수가 아무도 몰래 빨아주곤 했었다. 아빠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쭈그리고 앉아 팬티를 빠는 민구의 모습을 상상하자 표현될 수 없는 아픔이 가슴속을 훑어 내렸다.
“엄마는 잘 할 수 있어요.” 민구는 지수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민구는 엄마를 위로하는 방법으로 의젓함을 택한 것 같았다.
민구와 민수를 가슴에 안았다. 이 아이들을 두고 도대체 어디를 갈 수 있단 말인가?
엄마를 믿고 불안한 세상에 첫발을 내밀었던 우리 아이들, 지수가 살아야하는 가장 큰 이유이고 목적이었다.
마치 영화 촬영이라도 하는 사람들 같았다.
여러 종류의 기기들 사이로 소리 없는 움직이는 모습들, 기태는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침대에 지수의 손과 발을 X자로 묶었다. 온 몸의 신경이 몸밖으로 뛰쳐나왔다. 죽음의 공포가 느껴지는 만큼 살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열 명쯤 될까? 의사들이 침대 주위에 앉았다. 그들의 눈빛 때문에 더욱 불안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적어도 그 쪽에서는 그랬다.
처음엔 불길인줄 알았다. 숨을 쉴 수 없는 매운 연기가 목 젓을 밀어냈다.
의사에게 말했다. 제발 그만 하라고,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목소리가 나오기는 했을까? 온 몸에 불길을 뒤집어 쓴 것 같았다. 머리가 타는 것처럼 조여들다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올랐다.
목 젓을 밀고 나온 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창자가 밀려나왔다.
세탁기에라도 넣고 돌리는 것은 아닌지, 온 몸을 아프게 뒤틀고 철 지난 꽃잎처럼 살점을 툭 툭 털어 내는 것 같았다. 고통을 느낄 수 있어서 삶을 포기하지 않았었던가,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
몸이 회오리바람에 쓸려 돌기 시작했다.
깊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옆에 앉아 있는 간호원은 막 지구를 떠나려는 옷차림을 하고있다.
무균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균들은 모두 지수 몸 안에 들어앉아 그나마 먹을만한 것들을 찾아 뜯어먹는지 온 몸이 골고루 고통스럽다.
버섯 목 뒤집듯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집어 이번에야말로 세탁기에 넣어 싹싹 돌리고 싶었다. 그저 아픔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끔찍한 고통이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어 다행이다. 단 한사람도 고통의 백만 분의 일도 나누어 가질 수 없어서 지수는 화가 났다. 누가 육체적인 고통은 정신적인 고통만 못하다고 했던가? 어릴 적, 오랫동안 키우고 정들었던 개가 있었다. 어느 날 그 개가 쥐약을 먹고 입에선 비누거품 같은 개 거품을 내몰며 고통스럽게 온 몸을 비틀고 있는 모습을 바라 볼 때 어린 지수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아팠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걸레처럼 찢어지게 아프다고 한들 쥐약 먹은 개의 육체(?)적 고통만 할까? 그것도 한발 건너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고통이라면 말이다. 세월이 마모시킨 편린의 기억이 고통의 중심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은 황당하게도 지수자신의 고통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의 꽃을 사온 듯 했지만 병실 안으로 들여놓을 수 없었고, 병실 문에 달린 조그만 창을 통해 지수를 보고 갔다. 창을 사이에 두고 세상이 갈렸다. 기태가 아이를 안아 창으로 보여준다. 아이의 얼굴이 조그만 사진처럼 네모난 창안에 가득하다. 문득 아이의 손을 만져보고 싶어서 지수는 눈물이 났다.투병이란 병과의 싸움이 아니라 외로움과의 싸움 같았다.
DAY-12, 그들에겐 중요한 프로젝트 일게다. 간호원의 눈빛조차 예전 같지 않다.
편지 봉투만 하게 쓰여진 것을 지수가 머리를 고통스럽게 움직여야 볼 수 있는 곳에 붙여두었다. 사실 어느 곳에 붙인들 마찬가지겠지만. 정신이 어디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눈을 끔벅거리는 것 뿐, 얼음물 속에 이틀정도 담갔다가 꺼내어 실컷 두들겨 대는 것 같다. 지나치게 눈동자를 휘젓고 있었는지 의사가 눈을 뒤집어 보았다.
예의 편안함이나 미소대신 마른 목에 퍼런 혈관을 쭈욱 곤두세운 채로 의지를 다지는 듯한 의사의 모습에 지수도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12일을 잘 보내면 된다고 했다. 잘 보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다. 백혈구가 제로인 상태다. 말하자면 아군 없이 적군만 있는 싸움이었다. 이렇게 말하자 의사는 혈관을 그대로 곤두세운 채 아군은 지수의 정신력이라고 했다, 너무도 흔해빠진 얘기를 세례 주듯 심각한 모습으로 하는 그가 귀엽기까지 했다, 하지만 가장 평범했던 날들이 가장 행복했던 것처럼 정신력이란 그 말이 지수의 머리 속에서 빠르게 아이들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사는 알 리가 없었다.
주사 바늘만 보아도 구토가 올라오게 함으로써 이젠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몸은 말하는 듯 했다, 강하게 살고 싶어하는 마음 끝은 늘 죽음이었다. 죽음과 삶이 양쪽에서 팔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렇게 찢어져 버렸으면... 어느 곳에 희망을 둘지 몰랐다.
모든 것이 끝나야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삶이든 죽음이든.
고통은 참을 수 있을 때 고통이라고 부른다. 고통을 넘어선 죽음이 코앞에 와있다.
지수는 사선을 넘지 않으려고 아이들 생각을 한다.
아이들 생각을 하면 언 땅을 비집고 오르는 어린 싹들의 거절할 수 없는 생명력처럼 타버린 몸 속에서도 삶의 욕망이 피어오른다.
의사가 지적하고 지수가 선택한 정신력의 결과이다.
그러나 똑 같은 분량의 고통 또한 만만치 않아 몇 번이나 정신을 잃으면서도 정신을 차려야했다.
창에 빗물 부디 치는 소리가 들린다. 야자수들과 그 밑에 풀꽃들도 지수처럼 참을 수 없는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힘겨운 여행이 이정표도 없이 계속 되었다. 이젠 어느 곳에 망설임 없이 엉덩이가 아프도록 앉아 있고 싶다. 비가 멈추는 곳에서 수면에 떠오르는 햇살을 안고 허리까지 물이 차게 누워 있고 싶다.
비는 소리 없이 수면에 내려앉고, 뒤에선 만개한 꽃처럼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멈춤이란 표시 판 없이 세월은 거센 파도처럼 흘러간다. 뒤돌아보면 한 움큼의 세월이 흘러간 뒤지만, 꾹 꾹 눌러도 넘쳐나는 추억과 기억들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나 지수는 살고 싶어진다. 지금은 터널의 중간이지만 멀리서 촛불 같은 떨림으로 서있는 세상이 보인다. 껍질을 깨고 나온 듯, 새로운 세상이다.
푸드득하고 투계가 거친 날개를 휘두르듯 하루는 살아서 펄떡거리는 모습이다.
어느새 비가 개었다. 창문 너머로 하늘 한쪽을 턱에 괴고 앉은 무지개가 보인다.
엄마, 엄마,,,,, 갑자기 복도에서 커다란 드럼통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이 온 것이다. 이렇듯 아이들 이 찾아올 땐 기쁨과 희망을 가득 담은 드럼통을 발로 차가며 수선스럽게 온다. 내려앉는 천장을 받치기라도 하듯 단단한 어깨로 기태가 들어와서 지수를 바라보자 둘은 슬픈 영화를 보고 난 후처럼 아련해졌지만 마주잡은 손끝으로 사랑이 전해졌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웃어서 지수는 눈물이 났다.
지수의 파헤쳐진 가슴을 쓰다듬으며 제 가슴 아파하는 남편과 건강하게 자라주는 아이들. 죽음에서 삶으로 끌어 올려준 가족. 이제 지수는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 집도 내 집처럼 느껴지지 않고, 외롭다고 시린 겨드랑이에 한국을 끼고 살아온 날들이었지만 가족의 사랑과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곳, 일년이 넘도록 병원을 오가며 받아온 의사들의 최선을 다한 치료와 마음 한구석 가족처럼 느껴지던 친절은 지수가 죽음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큰 이유들이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일까?”
모든 것이 아름답고 문득 고향처럼 푸근해졌다.
자라기 시작하는 머리카락처럼 지수의 몸 안에서도 생명의 세포들이 피어나고. 네모난 병실이 창, 이라는 입을 통해 크게 웃는 듯 하다.
오른 손을 머리 위로 뻗어 DAY-1 카드를 힘들게 떼어냈다.
어디서 들어왔을까? 사랑과 희망, 행복과 빛이 가슴속에서 나비처럼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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