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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넌… 새롭게 태어난 그 영화, '올드보이'

원작(박찬욱) vs 리메이크(스파이크 리) 비교해보니…

영화'올드보이'를 표현하기에 '충격'보다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 2003년 처음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그랬고, 2013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 '올드보이(Oldboy)' 가 그렇다. 거장 스파이크 리 감독과 스타급 배우 조시 브롤린이 합류했다는 소식부터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하는 깜짝 뉴스였다.

27일 드디어 개봉된 할리우드판 '올드보이'는 원작과 다른 크고 작은 변화가 적잖은 자극을 준다. 같은 이야기를 지극히 할리우드적으로 전개하고 봉합하는 방식도 신선한 충격이자 아찔한 반전이다. 영화 곳곳에 원작 팬들을 위한 선물도 깨알같이 자리하고 있다. 스파이크 리의 '올드보이'는 박찬욱의 '올드보이'와 충분히 같되, 충분히 다르다. 그 면면을 비교한다.

갇힌 남자의 주메뉴는 군만두

할리우드판 '올드보이'에 관해 한국 팬들 사이에 가장 많이 쏟아졌던 질문 하나. '미국에서도 군만두를 먹이냐'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15년 간 갇혀 군만두만 먹은 한 남자의 이야기'로 요약하기도 했던 걸 감안하면 충분히 나올법한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답은 예스(YES)다.

아내와 별거 중인 알콜중독자 조 두셋(조시 브롤린·오대수 캐릭터)는 딸의 생일날, 친구가 운영하는 술집 앞에서 납치당해 알 수 없는 곳에 감금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20년 간 사육당한다. 주메뉴는 역시 군만두다.

그러나 군만두만 먹이지는 않는다. 메뉴가 제법 다채롭다. 아침이면 시리얼에 우유가 나오기도 하고, 다이어트용으로 흔히 먹는 에너지 바가 급식구로 들어오기도 한다. 군만두가 나올 때면 쌀밥도 따라 나온다. 심지어 술도 준다. 가끔은 뚜껑까지 근사하게 덮인 접시에 특식도 나온다. 물론 그 접시 위에 나온 음식의 정체는 심히 충격적이다.

원작 속 오대수가 감금된 방에는 인상적인 그림과 문구가 걸려 있었다. 그림은 제임스 앙소르의 '슬퍼하는 남자', 문구는 엘라 윌콕스의 시'고독'에 나오는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였다. 할리우드판에서는 이를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빨간 안내원 복장의 흑인 소년이 밝게 웃는 얼굴 밑에 '편하게 머무실 수 있도록 무엇을 해드릴까요?(What Can We Do To Improve Your Stay?)'라고 적힌 그림이 걸려있다. 원작과는 느낌이 좀 다르지만, 감금된 조 두셋의 신세와 섬뜩한 대조를 이루는 점은 마찬가지 맥락이다.

장도리 액션은 거의 그대로 재현

그 유명한 장도리 액션 신은 할리우드판에도 등장한다. 그것도 거의 비슷한 앵글과 카메라 워크를 통해서다. 하지만 감금시설의 두목 채니(새뮤얼 잭슨·철웅 역)에게 복수하는 도구로 장도리가 쓰이진 않는다. 대신 커터칼이 등장한다. 조 두셋은 커터칼로 채니의 목을 따고 거기에 소금까지 뿌린다. 오대수가 장도리로 철웅의 이를 뽑던 장면 못지 않게 강렬하고 잔혹하다.

대신 원작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오대수가 산낙지 먹는 장면, 초반에 술에 취해 날개를 달고 경찰서에서 해프닝을 벌이는 장면은 할리우드판에선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스파이크 리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원작에 대한 오마주를, 원작 팬들을 위한 짜릿한 즐거움을 다른 방식으로 선사했다. 스토리와 상관없는 일부 장면에 음식점 수조 속 산낙지, 날개를 단 길거리 상인 소녀의 모습을 등장시켰다.

감금돼 있던 오대수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 들어가 있던 커다란 트렁크, 이우진과의 전화통화를 위해 손에서 떼질 않던 휴대전화는 할리우드판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다만 트렁크는 루이뷔통 제품으로, 휴대전화는 아이폰으로 업그레이드됐다. 2013년판 '올드보이'의 주인공 조 두셋은 아이폰의 음악찾기 어플 '샤잠'을 이용할만큼 요즘 문물에 밝다. 자신을 감금한 애드리안(샬토 코플리·이우진 캐릭터)의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배경에 들리는 음악을 파악해 그의 정체를 추리해 나간다.

104분으로 압축 … 직선적 전개

이런 식의 비교가 원작 팬들에게 자잘한 재미를 안겨준다면, '올드보이'같은 원작이 어떻게 철저히 할리우드화되는 지를 살피는 굵직한 재미도 있다. 원작의 설정과 그 속에 담긴 영화적 핵심들이 할리우드판에서 변주된 과정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무엇보다 할리우드판은 원작에 비해 많은 것을 덜어내고 쳐내서 한결 간결하고 슬림한 영화로 거듭났다. 원작이 120분 길이였던 반면, 리메이크판은 104분으로 압축됐다.

캐릭터는 훨씬 단순해졌고, 이야기는 보다 직선적으로 전개된다. 원작이 과거로부터 겹겹이 빚어진 세 인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오대수·이우진·미도의 내면으로 관객이 서서히 젖어들어 가게했다면, 할리우드판은 마치 게임을 하듯 문제 해결 위주의 진행에 가까워졌다.

때문에 이우진의 복잡미묘한 눈빛이나 미도의 모호하고도 비밀스러운 이미지는 할리우드 버전에서 찾아볼 수 없다. 원작의 이우진에 해당하는 인물 애드리안은 그저 불안하고 광기에 휩싸인, 다소 평면적 악역이다. 반면 그의 숨겨진 가족사는 원작보다 더 쇼킹하고 무시무시하다. 이 때문에 애드리안은 이우진보다 더 심한 괴물로 보이기까지 한다. 마리(엘리자베스 올슨·미도 캐릭터)의 경우는 당차고 똑똑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간단하게 묘사된다.

의료봉사를 하며 메스와 붕대로 조 두셋을 치료해주는 마리, 일식집에서 일하며 횟칼을 들고 오대수를 따라다니던 미도. 두 여자의 차이는 꽤 크게 느껴진다. 자연히 할리우드판의 이야기는 각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기 보다는 '누가 왜 나를 가뒀는가'의 답을 찾는 조 두셋의 무서운 돌진에 더 힘을 싣는다.

호불호 크게 갈릴 새로운 결말

대신 스파이크 리 감독은 조 두셋에게 강한 부성애를 더했다. 오대수가 감금돼 있는 동안 참회록과도 같은 일기를 썼다면 조 두셋은 20년 동안 끊임없이 딸을 향한 편지를,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쓴다. 풀려난 후 그가 앞 뒤 안 가리고 애드리안이 던진 숙제를 풀려고 발버둥치는 동력도 단 하나다. 딸을 찾아가 아빠가 살인자라는 오해를 풀고 용서를 빌기 위해서다. 가족의 가치를 무엇보다 앞세우는 미국 관객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가기 위한 접근으로 보인다.

결론 역시 지극히 할리우드적이다. 원작에 익숙한 팬들에게는 가장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극히 신선하면서도 일견 당혹스러운 결론이기 때문이다. 모든 의문을 풀고, 그 뒤에 감춰진 경악스러운 진실을 마주한 조 두셋은 곧이어 놀라운 선택을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속죄이자 보속이며, 또다른 의미에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희생이다. 또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로도 해석될 수 있는 행보다.

리메이크 버전의 결론은 극단으로 치닫던 영화가 순식간에 정돈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원작의 강렬한 톤을 퇴색시키는 악수로 평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충격적인 반전을,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이 감당할 수 없을 반전을 깔끔하게 봉합하는 노련한 '신의 한 수'라고 볼 수도 있다.

이경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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