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시론] 60년전 전쟁의 '포로'가 된 메릴 뉴먼

김택규/국제평화포럼 편집위원

최근 북한당국은 관광차 북한을 방문한 한국전 참전용사인 미국 시민 메릴 뉴먼을 체포·구금했다. 그에게 붙인 죄목은 '반공화국 적대행위'다. 뉴먼은 실리콘밸리 IT회사에서 고위 재정담당 임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했다.

그가 북한에 가서 10일간 관광하는 동안, 무슨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인가. 북한은 어이없게도 뉴먼의 한국전 참전시 군 복무 활동을 문제 삼은 것이다.

뉴먼은 1950년 UC버클리를 졸업하자 곧 미육군 장교로 입대해 한국전에 참전했다. 그는 '구월산유격대'의 고문관이 됐다. 구월산유격대란 어떤 부대인가.

6·25전쟁 당시 대규모 중공군의 공격으로 한국군과 미군은 3·8선 이남으로 후퇴하게 됐다. 그때 황해도 일대에서는 반공 애국 청년들이 자위대를 구성했다. 그들은 국군이 곧 다시 돌아오리라 믿고 후퇴하지 않고 남아, 구월산 일대에서 인민군 및 중공군과의 게릴라전을 펼쳤다. 이것이 구월산유격대다.

1951년 초, 미극동군 사령부 정보국은 적 후방지역에 대한 정보수집과 유격전 전개를 위해 백령도에 8240부대를 설치했다. 그때 여러 섬에 분산돼 활동하던 구월산유격대를 예하에 흡수해 작전을 지시하며 보급지원도 했다. 미군의 지원을 받게 된 구월산유격대는 더 활발하게 적후방에 침투해 적의 주요 부대 습격, 시설물 파괴, 전투정보 입수, 요원 구출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한때 이 부대원은 2500명 정도로 막강했었다.

뉴먼 중위는 바로 이 부대에 배치돼 고문관으로서, 예하에 배속된 한국인 유격대를 지휘했다. 구월산 생존 부대원이었던 김현씨는 책에서 "1953년, 뉴먼 중위의 지시로 작전용 보트를 타고 북한 해안에 여러 번 침투해 작전을 수행했다. 뉴먼 중위는 우리에게 비상식량을 가지고 와서 함께 먹고 우리 텐트에서 자기도 한 자상한 미군장교였다"라고 회고했다.

뉴먼은 6·25전쟁 당시의 군대생활 행적 때문에 체포된 것이다. 그는 '6·25전쟁 미군포로'인 셈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 매체들은 뉴먼을 '한국전쟁에서의 가장 최근의 포로(the newest POW from the Korean War)'라 부르기도 했다.

전쟁 역사가 마크 소터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한국전을 60년 전의 뉴스로 본다. 뉴먼도 아마 그것은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그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뉴먼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한국인 전우들을 잊지 않았다. 여러 번 한국을 방문해 구월산 유격대원이 묻혀있는 국립묘지를 찾아가기도 하고, 생존 대원 및 그 가족들을 방문해 여러 방법으로 그들을 지원했다.

뉴먼은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기 때문에 지금 북에 억류돼 있다. 왜 한국정부 및 지도자들, 정치권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나? 과거 지나간 전쟁 때문에 참전군인을 억류하고 있는 북한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 그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백방의 노력을 해야 한다.

북한 당국도 고령에 심장질환이 있는 뉴먼을 속히 석방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조치하기 바란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