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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디플레이션의 징후

Los Angeles

2003.06.06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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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순 연방노동부 선임경제학자
미국경제 경기회복의 속도가 의외로 더디면서 얼마 전부터 디플레이션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어서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계에 먹구름을 뒤덮고 있다.

디플레이션이란 한 경제지역 안에서 일반물가 수준이 하락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미국경제 사상 1929~1933년의 세계 대공항 이후 디플레이션을 경험한 적이 없고, 그후 계속 특히 1960년대 이후에는 인플레이션이 경제정책의 주요 대상으로 문제시되어 왔다.

1979년에는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13.3%까지 올라가 경제침체와 고도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공존하는 소위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경제 질병이 새 용어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물가가 계속 떨어지면서 저 인플레이션 현상이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EU 등 선진경제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디플레이션에 관한 몇가지 통계수치를 들추어 보면 미국의 핵심 소비자 물가지수가 2001년 2.7%에서 금년 3월에 1966년 이후 최저수준인 1.7%로 크게 떨어졌고, 2000년 3월 이후 주요 상품의 가격이 자동차 2.8%, 가전제품 3.4%, 여자의류 9.9%, PC 57%, 그리고 셀룰러폰의 경우 14.6%나 하락하였다.

과잉투자 등이 원인 제공

물론 다른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상승한 것도 있지만, 큰 폭의 가격하락 추세가 적은 폭의 가격상승 추세를 능가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911테러사태 이후 항공료와 호텔요금 등이 마구 떨어지고 있는 것은 수요가 공급능력에 비해 너무 적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의 징후는 미국경제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일본은 1990년도 중반부터 일반물가의 하락 즉 디플레이션을 이미 경험하고 있으며, 독일을 위시해서 유럽경제에 파급될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이 농후한 원인을 관찰해 보면 2가지가 있다. 하나는 1990년대 경제거품이 한창인 시기에 행해졌던 과잉투자와 이로 인한 과잉 생산설비의 존재이다. 텔레콤, 항공, 자동차, 은행 등의 산업에 현존하고 있는 과잉생산설비가 비록 경기회복의 기미가 있어 소비가 어느 정도 올라간다 하더라도 기업투자는 증가하지 않고 물가에 대한 하향성 압박을 가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 온다.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이 짙은 다른 이유는 수요가 매우 더딘 것이다. 수요공급의 경제법칙에 의하면 공급보다 수요가 적으면 물가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미국경제가 작년부터 경기회복의 단계에 처해 있으면서도 회복의 속도가 더디고 수요가 매우 적기 때문에 일반물가의 상승이 정지상태에 있다고 하겠다.

철저한 대책만이 해결책

물가와 실업률과의 역관계를 설명하는 필립스 커브의 논리를 들추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현재 미국의 실업율은 6%로 지난 10년 이래 가장 높고, 유럽의 경우 사회주의적 경제제도로 인하여 오랫 동안 실업율이 10% 이상을 상회하고 있어서, 수요가 떨어지고 물가상승이 저조한 현상을 나타낸다.

디플레이션의 피해는 상당하다. 첫째, 일반물가가 떨어지면 먼저 기업의 이익이 줄게 되고, 주식시장에 피해를 주며, 임금을 줄이고 해고를 단행하게 되며, 종국에는 파산을 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둘째, 디플레이션이 심해지면 회사와 농가들이 파산하게 됨으로 불실 은행대부가 늘게 되어 은행 파산과 함께 금융시장이 마비가 된다. 1929~1933년 사이 은행의 40% 이상이 문을 닫았었다.

셋째, 실업이 대량 폭증하는 것이 디플레이션의 당연한 피해결과이다. 대공항시 실업률이 25%까지 올라갔던 것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실업으로 인한 소득감소 - 수요감소 - 물가하락 - 기업이윤 축소 - 기업파산 - 은행파산/주식시장몰락 - 실업증대로 인한 소득감소 - 수요감소 등의 디플레이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디플레이션의 피해와 위험은 인플레이션의 그 것에 비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미국경제를 위시해서 일본, 유럽 등 선진경제들이 나타내고 있는 디플레이션의 징후에 대하여 경제정책 결정자들은 보통 취하는 정도를 훨씬 능가하는 대담한 경제 진작정책을 계획,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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