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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선동'에 취약한 사람들

이계숙/자유기고가

한 연예인이 남편과 헤어졌다. 이유가 특별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던 중 남편이 기다려주지 않고 먼저 자리를 떠서. 한 여성 웹사이트에서는 이를 두고 갑론을박하느라 무척 시끄러웠는데 대부분 여자를 탓하는 글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밥 먹다 먼저 나갔다고 헤어지나. 그런 사소한 이유로 갈라선다면 이 세상에 이혼 안 할 부부가 있겠냐. 여자가 경솔하기 짝이 없다 등등.

나는 생각이 좀 달랐다. 설마 식사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은 그 이유 한가지로 그렇게 쉽게 결정을 내렸을까. 배려나 예의가 없는 남자에 대한 쌓이고 쌓였던 섭섭함과 분노가 그 일로 인해 폭발한 것은 아닐까.

더 중요한 것은 남편쪽 얘기도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급한 약속이 갑자기 생각나서 피치 못하게 자리를 떠야 했다든지. 아니면 평소 쩝쩝 소리를 내며 게걸스럽게 먹는 여자의 식습관을 혐오스러워했는데 그날따라 여자의 밥 먹는 모습이 정도가 심해 얼른 자리를 피한다는 게 여자의 화를 샀다든지 하는 등의 남자 쪽 입장.

다행히 나랑 생각을 같이 하는 글이 몇개 올라왔는데 그 의견들은 폭풍우 속 한줄기 휘파람 소리처럼 묻혀버렸다. 워낙 여자쪽을 성토하는 글이 강하고 거셌던 까닭이다.

그 사이트에 '정치방'란 게 있는데 들어가 보기가 무섭다. 현 대통령을 마구 인신공격하는 글들로 도배가 돼 있어서. 그 어떤 통계와 수치, 명확한 증거도 없이 대통령을 죽일 것처럼 난도질한다. 잘 하는 정책도 있으니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글이 올라오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대통령 친척이냐, '알바생'이냐로 몰아 가며 아주 작살을 내버린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도리도 없는지 개탄스러울 정도다.

요즘 다시 느낀다. 우리 민족은 패거리 민족이요, 선동에 취약한 민족이라고.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양쪽 말을 들어보고 내가 신중하게 판단하기보다 누가 앞에서 '와 ~' 하고 나서면 과정이나 이유는 간과해 버린 채 그냥 한쪽으로 확 쏠린다. 딸기가 빨간색일까 하얀색일까 긴가민가 하는데 누가 나타나 하얀색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선동하면 왜 하얀색인지 따지지도, 확인도 않고 그냥 우르르 따라 간다. 왜냐? 선동자의 대부분은 우선 목소리가 크고 그럴듯 해 보이기에. 그래서 그쪽으로 따라가야 내가 유리할 것 같기에.

예전 '광우병 사태' 또한 그랬다. 정부에서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아무리 목이 쉬게 설명해도 국민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집단최면에 걸린 것처럼 극단적으로 행동해 국가행정을 올스톱시키다시피 했다. 누구 하나 다른 목소리를 내면 죽일 놈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치 독일의 선전부 장관 파울 괴벨스는 일찍이 간파했단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에는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고. 선동에 휩쓸리지 않고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진정한 용기와 양심이 실종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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