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인칼럼]한국식 구이와 '필레미뇽'
본보 주간
비록 요즘 같은 더위환경이 아니더라도 한인타운의 웬만한 식당들은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붐비는 것 같다. 유행타는 음식점은 음식점들 대로, 별미로 이름난 곳은 또 그 곳들 대로, 주중엔 직장인들로 북적이고 주말엔 가족단위와 크고 작은 단체손님들의 예약이 줄을 잇는다. 식당 비즈니스 같으면야 어디 불경기라고 우울해 하겠는가. 파리 날리는 집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1∼2년새 한인타운 일원엔 각종 구이집이 부쩍 늘었다. 그 중에서도 알려진 식당들은 줄을 선다. 젊은층 중년층 할 것 없이 한테이블씩 차지하고 먹고 마시고 담소하고 있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구이종류도 어디 옛날처럼 갈비니 불고기니 맹숭맹숭한 기본구이 한두가지인가. ‘생’자가 붙고 ‘안심’자가 붙고 ‘흑’자가 붙고 또 각 부위별 구이가 요란하게 이름붙여져 손님들의 미각을 유혹한다.
게다가 소주까지 곁들이니 구이판은 기름에 휘발유 붙는 격이다. 직장인들의 퇴근길 필수코스로 마치 서울 한쪽이 그대로 옮겨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하루종일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지글지글 구이 한점과 소주잔을 입속에 털어넣으며 모두 날려버리는 표정들이다. 식당 메뉴판의 고기값이 굉장히 올랐는데도 여전히 붐빈다. 1인분에 20달러가 훌쩍 넘어섰지만 “어, 많이 올랐네” 하면서 계속 찾는다.
얼마전 친구따라 코스트코 홀세일 매장엘 갔다. 몇가지 사면서 고깃간도 기웃댔다. 언젠가 누가 비상식으로 추천해주길래 가끔 필레미뇽 스테이크감을 한 팩(4조각)씩 사다 얼려 둔다. 이래저래 외식하는 날이 많지만 집에서 저녁 먹는 경우 별 품 팔지 않고도 쉽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메뉴’라고 해서 말이다. 언 고기를 녹여 굽기만 하면 되니까. 샐러드 대신 김치와 함께 먹는다. 강한 김치양념이 스테이크 맛을 약화시키긴 하지만 그래도 입맛에 나쁘지만은 않다.
원통형으로 두껍게 자른(적어도 1.25인치 이상) 소 허리부위 살코기 ‘필레미뇽’(filet mignon)은 소고기 중에서 가장 부드럽고 연해 과연 스테이크 중의 스테이크다. 코스트코 가격이 파운드 당 약11달러로 4조각이 한팩, 20달러 안팎이다. 소매 마켓 가격은 파운드당 17달러로 훨씬 비싸 웬만한 수퍼마켓 정육부나 일반 레스토랑에는 없는 곳이 많다.
어쨌든 5달러면 가장 고급 스테이크를 먹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다른 부위에 비해 비싸기 때문에 식구 많은 집은 잘 집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필레미뇽 5달러’는 비싸다고 여기면서 식당에선 돈을 잘 쓴다. 1인분에 20달러가 넘는 구이를 잘도 시켜 먹고 손님접대도 후하기만 하다. 이 값엔 물론 순 고기값만 포함된 건 아니다. 밑반찬 좋아하는 한국사람들 취향에 맞게 여러가지 반찬이 나오고 밥과 국이 자동으로 딸려나온다.
우아한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필레미뇽 스테이크를 주문하면 고기만 한사람 당 30달러가 넘는다. 밑반찬은 커녕 샐러드도, 곤죽같은 시금치도, 아스파라가스도, 수프도 다 추가로 계산된다. 포도주라도 한잔 곁들이면 두사람분에 1백달러가 모자른다.
웹페이지에서 본 필레미뇽과 얽힌 유머 하나-. “곧 처형당할 미국인과 이탈리아인 그리고 프랑스인에게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 물었다. 페퍼로니 피자라고 대답한 이탈리아인은 피자를 먹은 다음 처형됐다. 프랑스인은 필레미뇽을 주문해 먹은 다음 처형됐다. 미국인은 딸기 한 접시를 갖다 달라고 했다. 딸기라고 네, 딸기요. 미안하지만 지금은 딸기 철이 아니야! 그러면 기다리겠습니다요….”
이 유머의 포인트는 딸기철이 될 때까지 사형을 미루고 싶은 미국인 사형수의 심리에 있겠지만 ‘죽기 전 소원’으로 등장한 필레미뇽이 얼마나 최고의 음식인지도 알려준다.
고기값이 올랐다고는 하나 그래도 한인식당이 싼 셈이다. ‘2인분 값’으로 적어도 4명이 하루저녁 걸게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입맛 없을 때 가끔은 필레미뇽을 사다 집에서 쿠킹하는 경제적(30달러를 5달러에) 호사를 누려보는 것도 미각을 돋구는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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