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패닉’이냐 ‘라티노’냐
중남미계 이민자들 논쟁
“스페인혈통 부인할 수 없다”
“히스패닉 대신 라티노로 불러야 한다” “히스패닉이란 표현을 포기할 수 없다”
흑인을 제치고 미국내 최대 소수민족으로 부상한 중남미계 미국인들이 ‘히스패닉’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둘러싸고 찬반논쟁을 벌이고 있다.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가들이 ‘니그로(Negro)’라는 용어의 폐지를 주장했던 것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하지만 흑인들이 당시 니그로란 말의 사용을 중단시키기 위해 일치된 입장을 보인데 반해 히스패닉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중남미계 이민자들 사이에 찬반주장이 엇갈리고 있어 주목된다.
히스패닉이란 말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은 이 단어가 중남미를 무력으로 정복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백인 식민주의자들과 연관된 표현이라는 점을 이유로 내세운다. 인종적으로 명확한 구분은 어렵지만 피부색깔이 갈색이거나 검은 쪽에 가깝다. 주로 중남미 원주민들의 피를 많이 이어받은 사람들이라고 간주하면 된다. 이들은 히스패닉이라는 표현은 자신들을 모독하는 것으로 주장한다.
이에 반해 스페인 등 유럽계의 피를 이어받은 중남미계 백인들은 히스패닉이라는 표현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럽인의 후손으로서 자부심이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 거주하는 멕시코 출신 백인 이민자와 쿠바 출신 백인 이민자들이 주로 이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히스패닉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중남미계 이민자들의 신경전은 그다지 심각한 상황으로까지 발전되지는 않았다는 느낌이다. 지난해 워싱턴지역의 한 히스패닉 단체가 히스패닉계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3%는 히스패닉으로 불리건 라티노로 불리건 상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에 반해 히스패닉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는 응답자는 34%, 라티노라는 말을 선호한다는 사람은 13%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히스패닉 트렌즈’라는 한 잡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중남미계 이민자 단체의 전국집회에서 히스패닉이라는 용어를 라티노로 대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나 안건으로 채택되지 조차 않았다. “중요한 안건이 산적해 있는데 쓸데 없는 일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는 것이 이유였다.
복잡한 문제를 싫어하는 낙천적 성격의 중남미계 이민자들로서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히스패닉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히스패닉이라고 하면 되고, 라티노를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라티노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그만이라는 결론인 셈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히스패닉이라는 용어가 미국에서 중남미계 이민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본격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30년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닉슨행정부 시절인 1970년 실시된 인구센서스에 히스패닉이라는 말이 삽입됐다. 이후 히스패닉이라는 용어의 사용이 확산되기 시작해 1980년경에는 정부에서 사용되는 공식 표현으로 자리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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