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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로망'과 '노망'의 한끗 차이

원창호/방송인

나이 탓일 게다.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청춘'이라고 말하는 빈도가 늘어가는 것은. 그런데 그렇게 말할 때마다 어떤 어설픔과 회한의 뒷맛이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에도 내가 마음은 청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순전히 '로망' 때문이다. 동경 또는 낭만적인 것을 꿈꾼다는 뜻인 로망. 그 싱그럽던 시절 내 청춘의 중심에는 로망이 있었다. 그것은 그 시대 청춘의 또 하나의 키워드였다. 그가 있어 청춘은 로맨틱했고 탄력이 있었다. 그때 로망은 나의 선망이었고 로맨티스트는 나의 이상이었다.

로망은 내 청춘의 감성을 나타내는 리트머스 시험지였고 내 상상을 그리는 크레용이었으며 때로는 내 청춘의 존재감을 지탱하게 해주는 지팡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파하고 사랑의 열병에 취한 청춘들에게는 그것들로부터 도피하게 해주는 최면제이기도 했다. 해서 로망 그것을 말하지 않고는 나의 청춘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런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중장년을 지난 지 오래인 지금도 여전히 로망은 나의 절친이다. 나는 오늘도 로망을 통해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치고 그를 통해 일종의 부드러운 카타르시스도 경험한다. 그는 일상과 상투로부터 나를 벗어나게 하고 고독과 외로움에 퇴로를 내어준다. 그가 있음으로 해서 나이가 쌓아놓은 완고함과 고집스러움이 누그러지고 완화된다.

나는 세상과 사람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하는 로망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하던가. 그에게 향하는 내 마음과 생각의 기울기가 편향됐기 때문일까. 때때로 남들에게 오해와 비판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 나를 곱게 보지않았던 그들은 대체로 로망은 노년의 언어와 품성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나이에 어울리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면서 '로망'이라는 말에 연연하면 할수록, 그것을 말하면 말할수록 '노망'으로 치부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노망이라…. 그럴 때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직언'과 '진언' 그리고 '음성'과 '언성'이 받침 하나 차이로 크게 다른 것처럼 '로망'과 '노망'도 마찬가지라고. 로망을 노망으로 부르는 것은 촛불이 햇빛보다 더 밝다고 우기는 억지와 같다고. 나는 망령스러운 노망은 배척하지만 낭만스러운 로망은 존중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다. 누가 뭐래도 나는 지금도 로망과 동지적인 유대감을 갖고 있다. 가파르고 처연한 삶과 물질을 신처럼 떠받드는 시대정신과 사조의 쓰나미에도 우린 서로를 끌어 안으며 하나라는 일체감으로 동행하고 있다. 그는 내 안의 낭만 본능, 로망 본능이 잠들지 않도록 흔들어 깨운다. 나를 꿈꾸게한다.

내 마음을 청춘으로 복원시키는 그의 박동소리를 매일 듣는다. 부드럽지만 강한 로망은 연약한 나를 이끌어주는 동력이다. 내 육신의 늙음과 영혼의 낡음을 더디게 하는 영험한 묘약이다.

나는 오늘도 욕망이 아닌 로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달린다. 그와 더불어 인생을 아름답게,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다. 내가 오늘도 마음은 청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로망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로망은 결코 노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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