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소원, 서원, 행원
조현용 / 경희대 교수·한국어교육
나는 어휘를 공부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연결고리를 발견할 때 선인들의 지혜에 감탄하곤 한다. 어휘는 단순히 현재의 우리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우리 모습을 비추고 있다. 인간의 사고와 역사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어를 공부한다는 것이 암기를 의미한다면, 어휘를 공부하는 것은 관계를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말 어휘에는 순 우리말 단어들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한자어나 외래어도 우리 속에서 우리말이 되어 숨 쉬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순 우리말보다 더 힘차게 활동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기 위함은 아니다. 의사소통이 가치가 낮다는 의미로 하는 말은 아니다. 의사소통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것이므로 당연히 그 중요성이 크다.
하지만 의사소통 외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지혜 등이 언어에 담겨있음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언어는 세상을 담고 있고, 세상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언어의 요소는 어휘이다.
우리는 어떤 희망을 이야기할 때 소원(所願)이라는 표현을 한다. 언어마다 소원에 해당하는 표현이 있을 것이다. 외국어에 관심이 많다면, 어떤 표현이 있는지 살펴보시라.
우리말에서는 주로 ‘바람’이라는 표현을 쓴다. 동사로 쓸 때도 ‘바라다’ 정도의 표현을 쓴다. 우리말에서는 소원과 비슷한 의미의 단어를 여러 가지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다른 언어에서도 다양한 표현은 없는 듯하다.
그런데 소원에 해당하는 한자 표현을 보면서 비슷한 어휘가 많은 것의 장점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휘마다 약간씩의 의미 차이를 두면서 생각과 행동의 느낌을 달리 할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말은 단순히 비슷한 말이 아니다. 비슷한 말에는 세계를 보는 다른 눈이 있다.
소원과 비슷한 표현으로는 서원(誓願)과 행원(行願)이 나타난다. 소원이라는 말은 ‘바라는 바’라는 의미이다. 즉, ‘내가 바라는 것’이라는 의미 정도인 것이다. 바란다는 말에도 간절함이 담겨 있겠지만 어떻게 바라고 있는지에 대한 느낌은 적다.
그런데 서원이라는 말은 ‘맹세하고 바란다’는 의미이다. 바라는 것의 차원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다. 바라기는 하되 단순히 바라는 것이 아니라 굳은 의지와 함께 바람을 갖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서원은 하기도 하지만, 세우기도 한다. 뜻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의 생각이다.
행원이라는 말은 바라기는 바라는데 단순히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바란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즉, 행동을 하면서 바란다는 의미이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희망의 결과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노력으로 행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원보다는 훨씬 더 강렬하고 적극적이다.
우리는 살면서 소원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고, 서원을 세워야 할 때가 있고, 행원을 가져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특히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이 깊어질 때는 소원의 차원을 넘어서 서원과 행원의 차원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소원과 서원과 행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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