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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문 조국으로의 여행(11)

New York

2004.02.1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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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음식점서 가까운 호텔에서 그날 밤 숙박했다. 지방 호텔 치고는 아늑하고 시설도 괜찮았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했다. 내일의 여정을 위해, 캐나다와 미국의 가족들, 그리고 가까운 친지들을 위해 간곡히 기도했다.

그 이튿날 아침 나는 같은 음식점에서 아침을 먹고 버스로 여주을 향해 떠났다.

여주로 간다.

여주는 어떤 곳인가. ‘여주산 쌀’이라고 하면 해외까지 수출된 명산품으로 유명했다. 여주는 그런 훌륭한 쌀이 나는 곳이다.

그러나 나는 여주라는 고을 이름을 근 반세기 전부터 알고 있다. 지리학적 지식이 아니다. 까닭이 있었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다. 미모의 여성이었다. 대전보육대학에 재학중이던 임성란이라는 여대생이었다. 그녀는 여름방학 때 보육실습 차 경기도 여주에 가 있으면서 서울에 있는 나에게 편지를 했다. 당시 나는 서울 감리교 신학대학 1년생이었다.

“여주에 와 있어요. 여광원이라는 보육원이랍니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노래도 가르쳐요. 함께 뛰어놀기도 하고요. 당신도 함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을 사랑해요.”

그녀가 여광원에 가기 훨씬 전이다. 나와의 교제가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대전의 한공장 사장인 K 장로님의 공장회관에서 미국으로 귀국하는 한 감리교 여선교사를 위한 송별파티가 있을 때였다. 임성란의 독창 순서가 있었다.

그녀는 하늘색 원피스 차림으로 주빈석 앞에 걸어 나가 환한 전등 아래서 ‘솔베이지의 노래’를 독창했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그 여름 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내 정성을 다하여 고대하노니 늘 고대하노라/아~ 아~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참 많이 받고/오 우리 하나님 늘 보호하소서 늘 보호하소서/쓸쓸하게 홀로 널 고대함 그 몇 해인가/아 나는 그리노라 널 찾아가노라 널 찾아가노라/아~ 아~



청중 모두가 그 녀의 아름다운 음성과 명창에 감탄해서 힘찬 박수를 쳤다. 임성란은 이 독창을 나를 위해 불렀다고 말했다.

그 후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러갔던가. 성란이 떠나간 지도 어언 사십년이다. 그녀는 영원히 갔다. 하늘나라로 갔다. 그런데 임성란이 부른 그 솔베이지의 노래는 내 가슴 안에 지금도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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