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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미인도

한국 여인의 미(美)를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을 꼽으라면 우리는 주저없이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의 <미인도(美人圖)> (그림)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다소 어정쩡한 자세이면서도 가냘픈 어깨와 조용하면서도 기품있는 얼굴은 한국 여성의 다소곳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윤이 나는 트레머리의 한 쪽에 자줏빛 댕기가 살짝 내비꼈고, 자주 고름에 달린 삼작 노리개를 그 희고 연연한 손으로 매만지는 자태가 이만 저만한 태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옷맵시에서 느끼는 세련된 풍김으로 보나 가체를 얹은 머리로 보나 기생이거나 소실이었을 신분을 말해주고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은 여인을 요염하게 서 있게 그리지 않고 어디에 걸터앉아 있는 자세로 표현한 것이다.
그림 속에 있는 작가 자신의 언급인 “다리 뻗고 앉은 여인의 가슴속 만가지 춘의(春意)를 붓끝으로 능히 전신(傳神)해 보았네”라는 구절에 의하면 여인이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여유로움, 자연스러움은 우리 인문화의 특성이자 일반 회화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아담하게 부풀어오른 치마의 곡선미와 전체 화면 속에 여인을 배치한 공간 처리에서 신윤복의 탁월함이 두드러진다.
부푼 치마에 칠한 푸른 채색과 저고리의 남색과 빨간색과의 어울림 또한 빼어난 것이다.
실제보다 약하게 그려진 저고리는 여인의 가냘픔을 더욱 강조시키며 치마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상쇄시키고 있다.
초생달같이 길고 가는 실눈썹과 귀 뒤로 하늘거리는 잔 귀밑 머리털에 이르기까지 이 초상에서 풍기는 염려하고 신선한 풍김을 바라 보고 있으면 혜원이라는 작가가 그 수많은 풍속도를 그린 것은 다 이 <미인도> 를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케 한다.
이 미인도는 왕가나 사대부 선비들의 집안에서 부인들의 초상화를 남긴 일이 거의 없음을 생각할 때, 그 가치가 높다.

 춘향이니 계월향이니 하는 기녀들의 초상은 있어도 사대부 가문 여인의 모습이 남겨져 있는 건 채용신이 그린 최홍련의 초상화와 <미인도> 가 전부다.
신윤복은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다.
자는 입부(笠父)다.
김홍도·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불린다.
그는 풍속화 뿐 아니라 남종화풍의 산수와 영모(翎毛) 등에도 뛰어났다.
속화(俗畵)를 즐겨 그려 도화서(圖畵署)에서 쫓겨난 것으로 전해지며 그의 부친 신한평(申漢枰)과 할아버지는 화원이었다.
그러나 그가 화원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는 직업화가로, 당시 수요에 따른 많은 풍속화를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작으로는 국보 제135호로 지정한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이 전한다.
모두 30여점으로 이뤄진 이 화첩은 간송미술관 소장품으로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전시를 통해 외국에도 잘 알려진 그림이다.
사회 각층을 망라한 김홍도의 풍속화와 달리 도회지의 한량과 기녀 등 남녀 사이의 은은한 정을 잘 나타낸 그림들로 동시대의 애정과 풍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밖에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탄금(彈琴)> 등 6점으로 된 화첩 또한 명품(名品)이다.



김영희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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