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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혜의 삶의 길목에서 - 홍해 건너는 법(2)

또 다시 막혀버린 길. 그 자매님은 내 자동응답기 속에서 자꾸 울고 있었다. 아니 내가 자꾸 그녀를 울리고 있었다. 전화번호를 확인하기 위해서 되감은 응답기는 낯선 여인의 울먹이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사모님! 저도 지금 홍해를 건너고 있어요!"
지난 번 중앙일보에 게재된 신앙수필 '홍해건너는 법'을 읽고 뜨거운 공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 옛날 메리처럼 자신도 이미 바닷길로 접어들었다고! 그러면서 내 두 번째 수필집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주문했다.

통화 좀 하고 싶다고 남긴 전화번호를 메모하고 난 후 나는 잠시 생각했다. 무슨 사연일까. 혹시 무슨 암 말기라도? 지금 홍해를 통과하는 중이라며 모르는 사람의 자동응답기에서 울먹이던 자매님. 그 절망의 무게가 가슴에 닿았다. 그 무게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행여 내가 쓴 최고 치의 언어와 실제 나의 인간적인 모습의 차이를 발견한 독자님께서 실망하지나 않을까.

그게 내 고민이었다. 그래서 때로 독자와의 대화를 기피하게 된다. 작가에 대한 환상을 좀더 오랫동안 독자님의 가슴에 품게 하기 위한 배려라고 한다면 지나친 억설일까.

잠시 기도를 한 후 무거운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어린 소녀가 영어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계시냐고 묻자, 잠시 기다리라면서 소녀가 어딘가로 달려가는 모양이다. 아, 지금 누워 계시는구나! 그래서 전화 받을 형편도 못 되는구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 후에 자동응답기에서 익혀둔 부인의 음성이 힘없이 들려왔다. 아, 과연 힘이 없는 음성이구나! 가슴이 철렁했다.

자매님은 나를 금방 알아봤다.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대화 도중에서, 걱정했던 불치병환자는 아니고(속으로 후 하고 한숨이 나왔다), 가정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때로 가슴이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고 하소연했다. 그녀의 아픔에 동참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냥 넋두리 같은 그녀의 사연을 가만히 듣고만 있을 뿐.

그녀는 자동응답기에서처럼 울먹이지는 않았다. 때로는 쾌활하게 웃어 제치기도 했다. 낯선 사람과의 통화에서 마음이 다소 풀어진 걸까. 그녀는 말했다. 가끔씩 자기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인생의 홍해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고. 세상살이에 너무 만족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행여 이 세상에 안주하겠다고 할까 봐, 우리는 이 세상을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며 우리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라 하늘나리임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 같다고...

과연 초등학교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쌓아온 깊은 신앙의 연륜이었다. 나중에는 내가 되레 위로를 받았다. 좋은 글을 써 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글을 스크랩해서 침대에 누워서나 응접실에 앉아서나 늘 가지고 다니며 읽고 있다고 했을 때의 감동이란! 그것이 또한 모든 작가들의 글을 쓰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얘기가 깊어갈 수록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녀가 홍해를 무사히 건널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홍해를 건너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미련의 겉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발 둥둥 걷어붙이고, 뒤돌아보지 말고, 두고 온 애굽적 삶에 어떤 미련도 갖지 말고 앞으로만 전진할 일이다. 육지를 향하여, 만나와 메추라기의 성찬이 있고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의 보호와 사랑이 있는 광야로 나아갈 것이다. 비록 광야의 삶에 더 많은 시련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홍해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메리여! 힘을 내라! 계속 나아가라! 그리고 잊지 말라! 바로의 군대는 반드시 물에 빠진다는 사실을!

워싱턴 문인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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