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맛과 멋] 죽을 용기로 살자
이영주 / 수필가
그날 졸업식 단상 위에 그가 착석하자 학생들이며 학부모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그를 반겼다. 축사를 하기 위해 마이크 앞으로 걸어 나오던 그가 무엇엔가 걸렸는지 넘어질 뻔하자 사람들은 목을 길게 빼고 무대 위를 살폈다.
줄리아드는 음악뿐 아니라 드라마와 댄스스쿨이 함께 있어서 합동으로 졸업식을 한다. 드라마스쿨 졸업생들에게 졸업장을 주는 순서에서 제일 먼저 나오던 학생이 단상에서 고꾸라질 뻔해서 다 함께 '에고!' 하면서 안타깝게 바라봤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학생들도 줄줄이 그렇게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로빈 윌리엄스부터 시작된 졸업식 특별 해프닝이었다. 드라마스쿨 졸업생답게 저마다 다르게 연출된 무대로 인해 졸업식 분위기는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그랬던 그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굿 윌 헌팅'에서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 '굿모닝 베트남'에서 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웃기고 먹먹한 감동을 주었던 그가 오랫동안 약물중독에 시달리고 파킨슨병과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은 슬프기 짝이 없다. 남들에게는 삶의 용기와 자유와 기쁨과 위로를 주었던 그가 정작 자기 자신은 고질적인 병마와 싸우느라 고독한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니 새삼 안타까워 가슴이 아프다.
인간은 살면서 누구나 어느 정도의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한다. 우리 세대가 사춘기 때는 자살이 무슨 유행인 양 낭만적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책을 좀 읽는 축들은 유서 쓰는 일을 멋으로 생각해서 경쟁적으로 매일 유서를 쓰기도 했다. 자살이 뭔지 죽음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하게 그저 감상에 젖어서 청춘의 충동을 그렇게 분출했던 것 같다.
결혼 초기에 상상 못할 시집살이를 하면서 나도 한때 일기처럼 유서를 쓴 적이 있다. 집안의 사랑을 온통 혼자 받고 자라다가 결혼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게 되니 그 사실이 용납되지 않았다. 내 자신이 너무 무력한 것 같고 못난 것 같고 싫어졌다.
그래서 친정 엄마에게 남편에게 유서를 쓰고 찢고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한 사실을 알고나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얼마든지 살 수 있지 않을까.' 신통한 생각이 난 것이다. 아기를 갖게 되니 순간 생이 축복 그 자체로 바뀌었다. 긍정의 에너지가 샘물처럼 솟았다.
돌이켜보면 그 외에도 어려운 고비는 참으로 많았다. 그때마다 불면증으로 우울증으로 공황장애로 숱한 날들을 고통 속에 보냈다. 다행히도 내 속에 남아 있던 긍정의 힘이 그 고비들을 때로는 신앙으로 때로는 자식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때로는 온전한 인간을 향한 이상으로 한가닥씩 어렵게 매듭을 풀 수 있었던 것 같다.
우울증은 생명이 있는 한 함께 가야 하는 또 하나의 내가 아닌가 싶다. 인간의 양면성이다. 삶이 고해(苦海)라면 청명하고 물결 잔잔한 날보다는 흉폭한 파도가 넘실대는 날이 오히려 더 많을 게 아닌가.
'지금도 '죽을 용기로 살자'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우울한 당신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추신> 누군지 말할 순 없지만 내 주변에도 지금 우울증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고통의 무게와 색깔은 그것을 겪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들을 위로하고 싶지만 정말 고통스러운 일은 적절한 위로의 말을 찾기 어렵기에 차라리 입을 다물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죽을 용기로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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