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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시감상-수라(修羅)

백 석 (1912∼ ? )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버린다.

김봉식 (시인)

김봉식 (시인)

차디찬 밤이다.


언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하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삭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평북 정주 출생으로 일본 청산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시인 白石(본명은 기행 夔行). 그는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영생여고보 교사로 있다가, 일제 말 만주로 건너가 측량기사와 세관업무에 종사하기도 했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와 머물게 된 그를, 월북 시인으로 규정하여 그의 글에 금서 딱지를 붙인 것은 안이하고도 도식적인 판결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의 시는 향토적 분위기 속에 평북 지방의 토속적 방언을 녹아들게 하여 유년의 추억을 더듬는 서정시가 대부분으로, 사회적 목적성을 가지고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주창한 것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늦게나마 6공화국에 와서 정지용을 비롯한 다른 월북(?) 시인들과 함께 그의 작품이 해금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해금 시인들의 작품 발굴에 전념했던 이동순 시인이 1987년 <백석 시 전집> 을 엮어내자, 김자야라는 익명의 여인이 나타나 <내 사랑 백석> 이라는 에세이집을 펴내 장안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여인은 나중에 고급 요정 ‘대원각’ 주인인 김영한 할머니로 밝혀졌다.
백석이 자기를 ‘자야’라고 불러주었는데, ‘자야’란 전쟁에 나간 낭군을 그리는 여인의 심회를 읊은 李白의 시 <子夜吳歌(자야오가)> 에서 따 지어주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젊은날 그와의 뜨겁고 안타까운 사랑을 고백했던 것이다.
그녀는 <창작과 비평> 사에 ‘백석문학상’을 제정하여 기금을 남기고 작고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는 白石이 순백의 이미지로 그녀에게 바친 사랑과 순정의 헌시였다.

이 시는 무심히 문 밖으로 쓸어버린 거미새끼 한 마리 때문에 거미의 일가족을 다 만나게 되었다는 조그만 체험의 시적 기록이다.
차가운 밖이라도 새끼 있는 곳으로 가라고 큰 거미를 문 밖으로 보냈는데, 그 자리로 또 찾아오는 이제 갓 태어난 더 작은 거미 새끼. 그 작은 것을 다시 문 밖으로 보내며 엄마나 누나나 형이 그 작은 새끼와 어서 만났으면 하는 시적자아의 염원. 이처럼 미물에까지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이 시인의 마음이라 하겠다.
제목 <수라> 는 ‘아수라장(阿修羅場)’의 준말로, 시인이 조그만 생명체를 쓸어버리면서 느꼈던 마음의 갈등과 혼란 상태가 ‘아수라’와 같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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