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다람쥐의 저축
안성남 / 수필가
작은 털복숭이 얼굴에 박힌 아주 조그맣고 반짝이는 두 개의 눈동자가 깜빡깜빡 움직이는 사이사이 호기심에 가득 차 나를 쳐다보고 있다.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시야를 낮춰 마주본다.
풍성한 꼬리가 잠시 흔들리다가 방향을 바꾸어 바지런히 줄기를 타고 올라가 버린다. 높다란 가지의 가느다란 끝에까지 달려가는 듯 싶더니 건너편 나무로 건너 뛰어 나무의 품속으로 숨어 버린다.
다람쥐뿐만 아니다. 가을 풍경에는 여러 가지가 우리 앞에 다채로운 모습으로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푸르른 여름은 지나갔다고 말하고 풍요의 가을 색깔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제 이 계절과 정식으로 인사하고 친하게 지내십시오. 갈색과 노랑과 붉은색으로 익어버린 여름밤의 꿈을 마주한다. 날리는 낙엽과 떨어지는 잎사귀와 아직 나무에 달려 있으면서 가을색의 화려한 수관을 만들고 있는 잘 익은 단풍잎들의 소리가 합창처럼 귀를 두드린다.
그 소리 사이에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은 뜨거운 햇살 아래 들리던 노래와는 다른 새로운 노래로 전해져 온다. 청명한 하늘과 하얀 깃털구름과 나무에게 작별인사 하는 낙엽의 배경 속에서 맑게 들려오는 가을 새들의 목청은 깨끗하여서 욕망을 털어낸 깨달음의 소리로 들려온다.
여러 가지 색깔과 크고 작은 새들이 길과 나무와 풀밭 위를 넘나들며 사람들에게 즐거움도 주며 말하고 있다. 이제 이 계절의 냄새를 잘 맡아보고 깊은 숨결을 느끼고 그 속에 푹 잠겨 보세요.
공원 길을 걸으며 동행하는 이것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 여름 어떤 나무와 친했는가. 그 위에서 어떤 모험을 겪었는가. 아니면 어떤 생활로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비를 즐거워하고 혹은 괴로워했는가. 당신의 시간들은 얼마나 괜찮은 것이었나요 물어오는 표정에 잠시 얼굴을 마주본다.
풀밭을 파고 도토리를 묻은 다람쥐가 다시 흙을 덮고 앞발로 꼭꼭 누르는 것을 보면 다람쥐의 저축이 또 하나 새로운 가을의 풍경이 되어 무심한 우리들 마음을 살짝 열어준다. 그렇게 사는 겁니다.
저 다람쥐는 번번이 자기가 어느 곳에 도토리를 감추었는지 잊어버리고 그렇게 먹히지 않은 도토리는 싹이 나고 자라고 커다란 나무가 되고 여러 생명들이 깃들이는 보금자리가 되어 주고 사람들은 그 그늘을 고마워하면서 살아갑니다.
가을 풍경은 아름답다. 겨울을 앞두고 있어 조금은 처절하게 아름답다. 그리고 한계절 넘어 봄을 바라보고 있어 작은 발이 꼭꼭 누르는 다람쥐의 저축이 있어 희망적으로 아름답다.
단풍이 든 나무를 보고 붉은 잎사귀까지만 보는 시야는 단풍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단풍의 나무를 보고 물들은 가을 색깔 너머를 보는 시야는 여러 계절을 베풀고 지금 저 현란한 단풍색을 만들어 내는 더 큰 숨결을 깨달으면서 가을을 즐기고 있다.
공원 숲을 나서면서 가을이 만들어 놓은 속깊은 풍경을 마음속에 소중하게 담아 본다. 동네 길로 가면 멋없는 생활전선이 옆으로 다가선다. 별로 대화가 원활치 않으면 저축하듯 담아 놓은 계절의 풍경을 가을의 풍경을 끄집어낸다. 도토리 입에 물고 달려가는 다람쥐를 쫓아가며 어디 사는가 물어본다.
그곳으로 편지를 보내면 답장이 올까. 답장이 온다. 묻어두었던 도토리 한 알 꺼내어 깨알깥은 글씨로 숲의 이야기를 적어 보낸다. 나도 내가 묻어 둔 도토리를 잊어버린다는 것을 알아요. 허지만 재미있잖아요. 여기 묻고 저기 묻고 당신도 보고 재미있어 하니까. 다람쥐의 저축이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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