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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추억이 몰려온다

[7080 추억의 청바지 콘서트]

이정선의 ‘섬소년’, ‘오늘같은 밤’, 쉐그린의 ‘동물농장’, ‘얼간이 짝사랑’, 유심초의 ‘사랑이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사월과 오월의 ‘장미’, ‘바다의 여인’으로 이어지는 통기타 음악은 책갈피에 꽃힌 단풍잎 처럼 마음 한 켠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추억을 불러낸다.

7080 추억의 힘은 본국에서 40~50대를 콘서트 장으로 불러냈다.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에 하나 둘 씩 들어선 무대에는 이제는 중년이 된 왕년의 스타들이 옛 히트곡을 열창했고 그 앞에서 역시 중년이 된 왕년의 팬들이 열광했다. 7080년 콘서트는 가장 성공한 기획 상품의 하나로 꼽혔다. 40, 50대가 3만 명이나 몰려들어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은 한국 대중 음악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대중음악 시장을 10대와 20대가 주도해온 것을 생각하면 ‘중년의 반란’이라 부를 만한다.

추억의 빗줄기를 부르는 갈증 나는 세월은 한국이나 LA이나 다를 게 없다. 한국의 7080 세대가 경제 개발의 야간작업과 정치적 격변, IMF의 실의를 거쳤다면 한인들에겐 낯선 땅에서 뿌리 내리기의 고단함과 폭동의 절망을 뚫고 2004년에 이르렀다.

1974년 ‘섬소년’이 수록된 데뷔 앨범을 낸 이정선은 서유석과 함께 한국 포크 음악의 살아있는 역사로 불린다. 하모니카와 기타를 버무려 내는 이정선의 노래는 통기타의 한 전형으로 남아있다. 음악인생 30년을 맞이한 지난 해 조규찬과 한동준, 윤종신 등이 ‘이정선 Forever’라는 헌정 앨범을 바친 것도 이런 뜻을 담고 있다.

“외딴 파도 위 조그만 섬마을 소년은 언제나 바다를 보았네…파도야 말해주렴 바닷속 꿈나라를”(섬소년)에서 보듯 그는 시적인 노랫말과 서정적인 멜로디의 싱어송라이터였다. 한국적 정서를 포크와 블루스를 버무린 음에 담아 냈던 그의 노래는 잘난 체 하지도 튀지도 않아서 느긋하고 편안했다.

본격적으로 블루스를 시도하는 한편 ‘해바라기’와 ‘신촌블루스’를 구성하며 그룹 음악을 활성화시키면서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의 대부로 불렸다. 또한 ‘이정선 기타교실’로 연주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닥터 기타’이기도 있다. 현재는 동덕여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운 매력으로 30년간 한국 대중음악의 자양분 역할을 했던 그는 지난 해 9년 만에 11번째 앨범 ‘핸드 메이드’(Hand Made)를 내놓았다.

푸른 상어라는 뜻의 ‘쉐그린’은 1970년 전언수와 이태원 듀오로 출발했다. ‘동물농장’과 ‘얼간이 짝사랑’ 같은 코믹 포크송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룹 사운드 활동과 함께 김민기와 양희은의 앨범에도 깊이 개입하는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침묵의 소리’와 ‘철새는 날아가고’를 번안해 불러 ‘한국의 사이먼 앤 가펑클’로 불리기도 했다.

80년 이태원이 솔로로 독립해 ‘솔개’, ‘고니’ 등을 발표하고 전언수가 81년 새샘트리오를 조직해 활동하면 쉐그린은 막을 내렸다. 전언수는 84년 이민와 뉴욕에 정착해 라이브 카페 ‘쉐그린’을 운영하고 있다.

1975년에 데뷔한 유시형과 유의형 형제 듀오 유심초는 지난 해 다시 뭉쳤다. 해체 18년 만의 일이다. 7080 붐을 타고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형 유시형이 동생과 합류했다. 되살아난 인기를 타고 여름께 새 앨범을 내놓을 계획이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휘감기는 하모니를 자랑하는 유심초의 대표곡은 ‘사랑이여’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중 ‘어디서…’는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 곡을 붙였다.

사월과 오월의 최대 히트곡은 ‘장미’. “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로 시작하는 ‘장미’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고백을 감각적인 가사와 아련한 목소리에 담아 인기를 끌었다. 콘서트에서는 이 밖에도 ‘옛사랑’, ‘화’, ‘등불’을 들려준다.

7080 음악의 인기는 추억찾기와 단순한 회상 이상일 수도 있다.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듯 과거의 추억은 앞으로 살아갈 힘이 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기적이 앞으로 살아갈 기적이 되듯 추억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앞길을 걷는 뒷심이 되기도 한다.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로 대표되는 7080년대의 음악은 한국 사회에서 대중문화와 청년문화 1세대였다. 그 때 20대는 트로트와 팝과는 다른 자신들 만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통기타, 대학 가요제를 통해 본격화 되면서 젊음의 열정을 쏟아낸 록 음악은 이전 세대와 분명히 색깔을 달리하며 풍성한 서정을 풀어냈다. 하지만 대학이 반독재 투쟁의 제1선이었던 암울한 시대에 이런 노래들은 운동가요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90년대로 넘어가면서 다시 댄스곡에 밀렸다.

7080 콘서트의 인기는 추억과 그리움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젊은 세대들이 중년이 되어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유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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