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새벽에 쓰는 편지]아테네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이영순 박사

신화의 나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중계방송석 뒤에 배경으로 서있는 파르테논 신전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웠습니다. 서울에 있으면, 어디서나 남산을 볼 수 있듯이, 아테네 시 어디에서도 아크로폴리스와 그 언덕 위에 우뚝 선 파르테논 신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은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일상속에서 바라볼 수 있으니... 저절로 예술적인 감각이 그들 삶에 배어버릴 것이 아닌가

2년 전 아테네를 여행했었습니다. 짧은 기간의 체류였지만, 그리스는 정감이 느껴지는 나라였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나라, 희랍비극을 탄생시킨 소포클레스의 나라, 희랍인 조르바의 나라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고적 제 1호인 파르테논 신전이 발산하는 흡인력 때문일까요 시내를 걷다가도 멀찌감치 파르테논 신전이 보이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다시 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지혜의 여신의 신전이 주는 매력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고대국가 아테네의 사람들은 지혜를 무척이나 존중했었던 모양입니다.

아크로폴리스에 서있는 에릭시온신전, 니케신전, 헤롯 아티커스 오데이온(음악장)을 필두로, 46개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장엄한 아름다움을 보며, 그 고도의 문화에 압도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월 속에서 많은 부분들이 무너지고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건축미에 경탄을 금할 수 없는데, 2천년 전, 아크로폴리스의 건축물들이 아직 창건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을 때의 그 빛나는 자태는 당대의 희랍인들의 자부심의 원천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방인들은 모두 문화와 지혜를 모르는 야만인들이었을 터입니다. 그런데 이 찬란한 문화와 철학의 도시에 돌연 나타나, 헬라인들의 신들을 젖혀두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알지 못하는 신”을 전하러 온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왜소한 체구, 볼품없는 외모, 안질로 눈을 껌벅이며, 말재주도 별로 없는 초로의 유대인. 사도 바울의 등장이었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아고라)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쎄.....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사도행전 17장 18, 19절]

“돌이 채석장에서 운반될 때마다 이 도시에 새로운 신이 하나씩 생긴다”라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아테네에는 신상이 돌처럼 많았습니다. 아덴을 방문한 사도 바울도 도시 전체가 잡신들로 그득한 모습을 보며 마음속에 의분을 느꼈습니다.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그로 하여금, 쉴새없이 회당에서 또 시장(아고라)에서 급기야는 아레오바고 법정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합니다.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여자든 남자든, 평민이든 귀족이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밑에 위치한 아레오바고는 재판관과 원로들이 모여 역사, 철학, 제반 종교문제들을 토론 규명하던 곳입니다. 대리석으로 된 자그마한 바위언덕인 아레오바고로 가려면 반들반들 패어있는 돌계단을 딛고 올라가야 합니다. 너무 매끄럽기에 넘어져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안내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았던 바위, 사도바울이 당대의 희랍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였던 바위이기에 미끄러움을 무릅쓰고 아레오바고 언덕에 올라갔습니다. 바람이 시원한 바위 언덕위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며 새삼 감회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눈 밑에 펼쳐지는 푸른 숲이 있는 자리가 바울이 복음을 전파했었던 저자(아고라)입니다. 아테네 시가(市街)가 다한 곳에 “늑대의 산” 봉우리가 보이고 앞쪽으로는 파르테논 신전 입구인 프로필레아가 올리브숲 위에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이 바위 위에서 사도바울은 에피큐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하고 죽은 자의 부활을 선포하는 설교(사도행전 17장 22절-31절)를 했던 것입니다.

헬라인의 숭앙을 받는 지혜의 여신의 찬란한 신전 앞에서, 내노라 하는 아테네의 지식인들 앞에서, 인간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 신,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의 부활을 전하고 있는 왜소한 유대의 노인. 그리고 연이은 조롱의 웃음소리... 동키호테가 거대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이와 같았을 것입니다. 거대한 파르테논 신전이 올려다 보이는 아리스바고 바위 위에서의 사도바울의 연설은 바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무모한 시도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서 새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숭배의 대상이었던 아테네 여신은 이젠 신화 속 인물로 사라져 버렸는데, 사도 바울이 전한 예수 복음은 그리스와 로마제국을 휘감았고, 유럽의 왕국들에 확산되었고, 이젠 전 세계 곳곳에 전파되어 살아있는 역사를 창조해가고 있습니다.

제가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는 동방정교의 수난절이었습니다. 예수 고난을 기리는 때문일까 거리에서 만나는 여인들은 대부분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부활 전야 자정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불을 켤 양초를 준비하느라 바빴습니다. 거리엔 양초를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했고, 식당들은 긴 막대기에 양을 꿰어 불에 굽고 있었습니다. 이제 자정이 지나고, 부활절이 되면 고대 아테네 지식인들이 조롱했던 “예수의 부활 사건”을 축하하며 현대를 사는 그들의 후손들은 기쁨으로 양고기를 먹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반전(反轉)입니다.

[email protected]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