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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연인]현란함으로 치장한 '무협 멜로'

Los Angeles

2004.12.03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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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선 '십면매복' 한국에선 '연인' 미국에선 '비도문'(House of Flying Daggers).

장이모 감독의 '연인'은 이렇게 세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중국과 미국에선 무협영화로 한국에서는 멜로영화로 본 것이다. 어느 것이 이 영화의 본모습을 더 잘 잡아낸 것일까?

겉으로 보기엔 '연인'은 분명 무협영화다. 장 감독의 전작 '영웅'처럼 '연인'도 시작과 함께 장엄한 역사의 커튼을 드리운다. "당나라. 중국 역사의 황금기였으나 859년에 이르러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왕조는 무능하고 대신은 부패하며 반란군이 들끓는다. 반란조직 가운데 가장 강성한 것은 도성 인근 팽 티안 지방에 출몰하는 비도문이었으니…."

그러나 역사의 장엄한 커튼은 배경을 설명하는 짤막한 설명이 끝나면서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역사와 별 상관없는 무협이 시작된다.

비도문은 관군과의 전투에서 우두머리가 살해된 뒤에도 세력을 넓히고 팽 티안의 관리 레오(유덕화)와 진(금성무)에게는 새로운 우두머리를 잡아오라는 명이 떨어진다. 인근 홍등가의 새 무희 메이(장쯔이)가 죽은 비도문 우두머리의 딸임을 알고 체포한 레오는 진을 떠돌이 무사 풍으로 변장시켜 메이를 탈출시킨다. 메이의 마음을 사로잡아 비도문의 은거지를 알아내려는 것이다.

앞을 볼 수 없는 메이를 속이기 위해 진은 관군과 짜고치는 전투를 벌인다. 이들이 광할한 대지에서 벌이는 전투는 분명 무협이다. '영웅'에서 그랬듯 장 감독은 의도적으로 '와호장룡'의 영향권에 머물며 무협의 오락성을 펼친다.

역사의 커튼을 장엄한듯 드리우고 그렇게 쉽게 증발시켜 버릴 수 있냐고 '와호장룡'이 닦아놓은 무협의 대중성에 너무 심하게 기대는 것 아니냐고 대나무 숲 대결은 이제 너무 식상하지 않냐고 그리고 오히려 '와호장룡'의 여운을 망쳐놓지 않았냐고 중얼거릴 필요는 없다. 이런 것이야 이미 '영웅'에서 더 싸하게 맛본 배신감(?) 아닌가.

'붉은 수수밭'과 '귀주 이야기' 등으로 유럽의 영화제를 휩쓸며 중국 영화예술의 전령이 됐고 '인생'에서는 삶을 바라보는 깊이와 감동을 보여줬던 장이모 감독. 그가 변한 것이야 '영웅'으로 만천하에 알려졌다. 그래도 '책상 서랍 속의 동화'나 '집으로 가는 길'에서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 중국 산업화의 암울한 미래의 한 면을 숨겨놓기라도 했다. '영웅'에서 그는 노골적으로 상업영화를 추구했고 성공했다. 배신감을 느끼는 이는 느끼고 재미를 느끼는 이는 느낀다.

그래도 '연인'은 심했다. 무협영화로 끝났으면 완성도 있는 오락영화로 볼 수도 있을 터인데 멜로 드라마로 둔갑한다. 메이와 레오 진의 삼각관계는 후반부의 거듭되는 반전을 통해 지극히 통속적으로 변한다.

사랑과 우정 배신의 삼각관계가 극으로 치닫는 마지막 장면. 가을이 갑자기 겨울로 바뀌면서 눈이 내리는 장면도 그냥 넘어가자. 촬영지인 우크라이나에서 10월에 갑자기 폭설이 내려 어쩔 수 없었다고 하자. 아무리 그래도 레오와 진이 가을에서 겨울까지 계속 싸웠냐고 묻지 말자. 왜냐하면 다음 장면은 더욱 황당하니까. 죽었던 메이가 마른잎 다시 살아나듯 일어난다. 무협이냐 멜로냐로 따진다면 '연인'은 멜로지만 이 장면에서 다시 코미디로 바뀐다. 하지만 멜로인데 어쩌겠는가. 메이가 있어야 멜로의 마지막 장면이 완성되는데.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하면 '연인'은 철저히 장쯔이의 영화다. 홍등가에서 콩과 북의 메아리 게임을 할 때부터 카메라는 장쯔이를 숭배한다. '와호장룡'을 연상시키는 무협 신과 후반부의 사랑의 기로에서 배신을 할 수 밖에 없는 여인 그 사이의 목욕 장면까지 장쯔이는 여신처럼 숭배된다. 도입부에서 장쯔이는 춤을 추며 이렇게 노래한다. "북방에 어여쁜 이 하나 있어 / 온 세상 뒤져봐도 홀로 우뚝하네 / 한 번 돌아보면 성을 기울게 하고 /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기울게 하네 / 그리될 줄 누가 모르리요만 / 어여쁜 이 다시 얻기 어려운 걸" 장 감독에게 장쯔이는 경국지색이다.

장쯔이와 함께 영화를 이끄는 것은 현란한 색이다. 색은 '붉은 수수밭'에서 '연인'까지 여러 모습의 장 감독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어다. 그중에서도 상업적 성격을 분명히 한 '영웅'과 '연인'의 색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휘황찬란하다. 한데 조미료 듬뿍 친 음식처럼 볼 때는 눈에 착착 감기지만 뒷맛이 오래 가지는 못한다.

3일 개봉. 등급 PG-13. 와이드 상영.

안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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