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교차로] 꽃이 피는 이유
이 기 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꽃은 혼자서는 생명을 보존할 수 없다. 꽃들끼리 어우러져 꽃가루가 서로 만나야 씨와 열매를 맺는다. 그대와 나의 사랑이 서로 만나 영롱한 별이 되는 것처럼. 민들레는 하얀 씨들을 수없이 바람에 날려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목숨줄을 심는다.
동물은 짝짓기로 새끼를 낳아 자손을 번식시킨다. 꽃들은 짝짓기를 할 수 없어 꽃을 피운다. 빨간 파랑 노랑 무지개 빛 황홀한 색깔로 눈길을 유혹한다. 벌과 나비는 가루받이를 위해 유인된 큐피트다. 달콤한 꿀을 조금 더 얻기 위해 피곤한 날개짓을 퍼득일 동안 꽃은 미소 짓는다. 나비와 벌이 스쳐간 그 자리에 목숨줄 튼튼히 내릴 생명줄 하나 숨쉬고 있다는 것을. 수술이 암술에 입 맞추는 순간 천지가 개벽하며 생명의 탄생 알리는 굉음소리를 듣는다. 이때 암술대는 열매 맺을 씨를 재빨리 씨방에 감춰둔다. 그대 사랑의 열매를 몸 속에 아홉달 동안 품은 것처럼.
꽃은 꽃잎 암술 암술머리 수술 꽃받침 씨방 밑씨로 구성돼 있다. 암술은 암술머리 암술대 씨방 밑씨 배주로 돼 있고 밑씨가 자라서 종자가 되고 씨방은 열매가 된다. 꽃밥과 수술대로 된 수술은 꽃가루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꽃잎은 아름다운 자태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지만 꽃잎의 중요한 책무는 암술과 수술을 보호하는 것이다.
봄꽃은 겨울을 지내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못한다. 추운 온도에 노출되어야 꽃 분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랑이 별리를 거쳐 더 깊어지는 것처럼. 사과나 배 등 장미과 식물은 사계절이 뚜렷해야 과실을 잘 맺고 맛이 깊어진다. 백합과 튤립도 혹독한 겨울을 지나야 아름다운 한떨기 꽃을 피운다.
어떤 꽃은 밤낮의 길이를 측정해 일년 중 매년 정확한 날짜에 꽃을 피우기도 한다. 한여름 밤의 여신 무궁화꽃은 짧아지는 밤의 길이를 재다가 하지가 다가오면 개화 호르몬을 분비해 장렬한 꽃을 피운다. 고추와 수박은 나이 들면 어느 때고 꽃을 피운다. 자신의 나이를 마디 수로 하기 때문에 일정한 성장을 한 뒤 꽃을 피운다. 세월이 고추의 매운 맛을 알게 하고 수박의 달콤한 즙을 삼키게 한다.
피고 지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죽고 사는 모든 것에 생의 의미가 있는 것처럼. 꽃이 피는 이유 목숨줄 잡고 버텨야 하는 생의 찬가가 꽃 속에 있다. 꽃잎이 흩어지고 봄날이 가도 씨방에 밑씨로 남을 한 톨의 사랑이 그대 삶 속에 남아 있다.
'관계를 맺지 않은 꽃들은/ 아름다울지는 몰라도/ 그 이상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꽃은/ 그 이름이 무엇이든/ 내 손을 뻗어 내 시간과 정성을 들인/ 꽃이란 걸 알았다.' (마종기의 '우리 얼마나 함께')
사랑에 취해 당신 곁에서 꽃잎으로 꽃받침에 붙어 있을 때가 좋았다. 민들레처럼 바람에 몸을 싣고 그대 한없는 사랑 찾아 길을 떠날 땐 더없이 행복했다.
사랑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꽃이 피는 이유 꽃이 지는 이유를 알면 꽃잎이 흩어져도 그대 가슴에 남을 사랑의 세레나데 부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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