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남 칼럼] 애틀랜타 유태인 박물관 이야기
필자는 이번 학기부터 에모리대 평생교육원(Emory Continuing Education)에서 ‘이스라엘과 아랍분쟁’이란 과목을 공부하고 있다. 수업과정의 하나로 지난주 학생들과 함께 애틀랜타 미드타운 유태인 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 투어에 앞서 우리들은 계단식 강의실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생생한 증언을 듣게 되었다. 홀로코스트는 나치에 의한 학살을 말하는 것이다.1945년 1월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태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600만에 이르는 유태인이 인종청소라는 명분아래 나치스에 의해 학살되었다. 인간의 폭력성, 잔인성, 배타성, 광기가 어디까지 갈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20세기 인류최대 치욕적인 사건 이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이야기는 그의 조국 폴란드에서부터 시작했다. 나치가 폴란드를 침범하였을 때 그의 아버지, 어머니는 나치를 물리치기 위하여 유태인 단체와 함께 레지스탕스가 되어 싸웠다. 어머니는 전투 중 큰 부상을 입었고, 삼촌은 사망했다. 그는 그 후 나치에 붙잡혀 아버지, 어머니, 누이와 함께 홀로코스트 감옥에 수감됐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의 가족들은 모두 러시아로 보내졌고, 1945년 2차 대전이 끝난 후 장장 1800마일을 9주동안 걸어서 오스트리아 캠프에 도착했다. 그리고 1950년 미국의 배를 타고 뉴욕 항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고생했던 이야기는 우리들이 겪은 6.25 전쟁 못지않게 참혹했다. 뉴욕에 도착한 그는 미국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는데, 유태인 단체의 도움으로 애틀랜타에 정착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처럼 흑인타운에서 작은 그로서리 가게를 시작했다. 오랜 시간 힘들게 일하는 가운데에도, 가난한 이웃을 돕고 동네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주면서 이웃과 친하게 지냈다.
그는 자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는 길만이 너희들의 장래를 열어준다”고 항상 강조했다. 그래서 그의 자식들과 손주들은 의사, 변호사, 기업가,정치인이 되어 미국의 주류로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강의 후 여러 학생들의 질문의 답변에 일일이 진지하게 답변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필자를 포함한 나이든 학생들은 생사를 넘나들며 배고프고 추운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훔쳤다.
생존자의 증언을 들은 후, 홀로코스트 관련 수많은 사진과 자료들을 관람하였다. 충격적인 내용도 많았다. 이곳은 미국에서도 몇군데 없는 홀로 코스트 박물관 중 하나이다. 그다음은 애틀랜타 유태인 공동체의 역사박물관이었다. 유태인들이 처음 애틀랜타에 정착한 이래, 10년마다 중요한 발전과 사건, 중요 인물을 사진과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유태인인 샘 무셀(Sam Mussel)은 애틀랜타 시장에 당선되었는데, 선거에서 흑인유권자의 90%, 백인 유권자의 25%의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또 애틀랜타를 대표하는 기업인 홈디포를 창업한 버니 마커스(Bernie Marcus)와 아서 블랭크(Arthur Blank)는 러시아 출신 유태인이었다. 블랭크는 애틀랜타 팰콘스 구단주이며, 조지아 아쿠아리움에 2억5000만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메트로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유태인 인구는 12만명이라고 한다. 유태인들은 신앙과 자녀교육과 부의 축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점에서 우리 한인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유태인은 정치력 신장과 이웃에 대한 배려와 나눔을 꼭 실천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우리 애틀랜타 한인사회 지도자들과 학생과 학부모들도 이곳을 방문하면 많은 점을 배울수 있을 것이다. 애틀랜타 유태인 박물관의 주소는 1440 Spring Street NW, Atlanta, GA 30309이며, 전화번호는 678-222-37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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