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임창현의 시가 있는 벤치 414
만질 수 없는 평화-이기철
노래를 만들다가 잠드는 밤에는
노래 혼자 깨어 있다
호수에 스무 마리의 물고기가 숨 쉬는 소리가
산을 넘어 올 때
그건 하느님이 보낸 엽서거나 모르는 신이
만들어 낸 만져보지 못한 평화다
모든 평화는 오렌지처럼 조용하다
겨울에 모두 난로를 피워
평화를 만든다
너의 잠들기 전의 첫 숨소리가
물고기의 숨처럼 피를 따뜻이 데운다
너의 숨은 언제나 공기
새의 부리에도 들어가지 않은 맑은 바람
금방 돛폭을 내려 걷기 시작한 햇살
검정꼬리 쥐빠귀가 발음한 첫 지저귐
네가 잠드는 소리가 오리나무 잎사귀를 밟고
산을 넘어올 때
나는 평화 뒤에 오는 불행도
발톱이 길어진 재앙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맑은 눈을 뜨고 흙에 댄 씨앗처럼
만질 수 없는 교회 앞마당의 평화처럼
누가 평화를 만질 수 있었던가
누가 평화를 손으로 만질 수 있었던가. 말로는 만질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다. DMZ처럼. 가령 시를 쓰다가, 짓다가 밤 깊어졌다 하자. 그때 나는 없고 시만 남아 깨어 있으리라. 시만 살아있는 물체처럼 꿈틀거리리라. 그때 다만 우리는 감은 눈 속에서 신이 보내준 평화를 보고 있을 것이다.
겨울, 난로가 타는 것은 평화다. 만질 수 없어도, 만지지 않아도, 고요하게 타는 불은 평화다. 인간이 저지르지 않고 있는 것들은 저지르지 않은 그것대로 모두 평화다. 우리는 그 평화를 보고, 만지고, 숨 쉬며 살아가는 것이다. 맑은 눈을 뜨고 흙에 가슴 댄 씨앗처럼. 탐스런 오렌지처럼. 따스한 난로처럼. 사람들아 우리 서로에게서 평화를 뺐지 말자.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