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흑인" 돌레잘 사건 '인종전환' 논쟁 비화
백인이면서 흑인 행세 물의 '레이첼 돌레잘'
네티즌들간에 '인종전환(transracial)' 논란이 달아오르고 있는 것. 발단은 돌레잘이 자신의 사례를 '인종전환'이라고 규정하면서 비롯됐다. 성전환(transgender)처럼 스스로 인종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그러자 돌레잘의 언급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기극'을 '인종전환'이라는 말로 덮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를 옹하하는 측도 있다. 일부에서는 얼마 전 65세에 여성으로의 성전환 사실을 밝혀 화제가 됐던 브루스 제너와 비교하기도 했다. 제너의 성전환은 수용하면서 왜 돌레잘의 인종전환은 받아들일 수 없느냐는 주장이다. 인종문제가 심각한 미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터무니 없는 비유'라는 주장이 압도적이다. 외모까지 바꿔가면서 흑인처럼 보이려 했던 것은 잘못이라는 비판이다. 더구나 '성전환'과 '인종전환'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 특히 입양아 커뮤니티로부터의 비난이 거세다. '인종전환'은 주로 인종이 다른 가정에 입양돼 성장한 경우를 일컫기 때문이다. 2009년 연방보건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입양아의 40%가 인종이 다른 가정에서 성장했다.
현재 이 논란은 SNS(소셜네크워크) 상에서는 젭 부시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보다 더 뜨겁다.
여기에다 돌레잘의 과거 미심쩍은 언급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의 신뢰성에도 흠집이 생기고 있다. 아무튼 돌레잘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더 지속될 전망이다. 그동안 흑인이 백인처럼 행세하는 사례들은 많았지만 반대의 사례는 것의 없었기 때문이다.
장태한 UC리버사이드 소수인종학과 교수 겸 김영옥연구소 소장도 "다른 사람을 속인 것이기는 하지만 백인이 흑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말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미국사회에서는 흑인의 피가 조금만 섞여도 흑인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외모적으로 백인에 가까운 흑인들은 차별을 우려해 백인처럼 행세하는 '패싱(passing)' 사례는 많지만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돌레잘은 '가짜 흑인' 논란이 불거지자 NAACP(전국유색인지위향상엽회) 워싱턴주 스포캔 지부장 직을 사임하고 침묵했었다. 그러다 16일 NBC방송의 '투데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날 돌레잘은 진행자 매트 로우어가 "당신은 백인인가, 흑인인가"라는 질문을 하자 "나는 흑인이라고 규정한다(I identify as black)"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진행자가 10대 초반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진을 보고도 흑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사진을 보면 백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그러나 돌레잘은 "나는 결코 백인이 아니다. 나를 백인이라고 규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상처받는 입양아 커뮤니티
'인종전환'이라는 말은 타인종 가정에 입양돼 성장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즉, 출생 배경과는 유전적, 문화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레잘이 자신을 '인종전환'의 사례로 언급하자 입양아 커뮤니티로 부터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돌레잘의 인종전환 발언이 왜 잘못됐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백인 여성이 흑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인종전환'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사람들을 속인 돌레잘의 왜곡된 발언이 많은 입양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인입양아 및 입양부모 네트워크'의 킴벌리 맥기 사무국장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돌레잘은 역사적인 경험이 담겨 있는 것을 농담처럼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한국에서 출생한 맥기는 생후 5개월 만에 뉴저지 로체스터에서 성장했다.
필리핀에서 출생해 백인 가정에 입양된 리사 마리 론린스도 "성장 과정에서 학교는 물론 곳곳에서 겪었던 인종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고통을 겪었다"며 "내가 경험한 것들이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이해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작가인 엘리 프리맨은 "인종전환은 '성전환'이 내포하고 있는 성적 불편함과는 다른 것"이라며 "돌레잘의 성장 배경에는 흑인들이 갖고 있는 노예시대의 트라우마나 그들이 겪었던 차별이 없다"고 설명했다.
흑인으로 태어나 백인 가정에서 성장한 한 입양아도 "우리는 외모적인 차이보다 문화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기때문에 스스로를 '인종전환'이라고 부른다"며 "하지만 돌레잘의 인종전환은 남을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돌레잘에 쏟아지는 의구심
돌레잘은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언제부터 사람들을 속이기 시작했나"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대신 "내가 (흑인이냐, 백인이냐라는 질문에) 흑인이라고 답하는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으니 그렇게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돌레잘의 과거 행적들이 하나 둘 밝혀지면서 그에 대한 신뢰성도 떨어지고 있다. 돌레잘은 스포캔으로 이주한 후 멀쩡한 백인 부모가 있음에도 지인들에게 한 흑인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소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올해 초에는 한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의붓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고 남아프리카에서 생활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친척들에 따르면 의붓아버지는 없고 그의 부모가 남아프리카에서 생활한 적은 있지만 그것도 돌레잘이 성장해 집을 나간 이후라는 것이다.
또 돌레잘이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언제부터 본인이 흑인이라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에 "5세때 복숭아색 대신 밤색 크레용으로 내 얼굴을 그렸다"고 답한 것에 대해 그의 부모는 "그 당시에 돌레잘은 흑인은 한명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김동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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