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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정다운 이웃들

이계숙(자유기고가)

"이제 다시는 자기하고 쇼핑 안 갈란다"
L씨가 전화로 다짜고짜 하는 말입니다.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묻습니다.
"왜요?"
"몰라서 물어?내 옷 사이즈가 12라고 온동네 소문을 내는 바람에 창피해서 나다닐 수가 없어."
지난번 칼럼에 나간 내용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그러나 나는 시침을 뚝 뗍니다.
"아니, 새크라멘토에 L씨가 어디 한두명이요?그리고 나는 분명히 L씨라고 썼습니다.이씨라고는 절대 안썼어요."
"자기하고 친한 L씨가 미장원하는 L씨 하고 노래 잘하는 L씨,그리고 나밖에 더 있어? 두 L씨는 날씬하쟎아.글을 읽은 사람들이 모두 다 내 얘긴줄 금방 알던데 뭘"
지지난번 '밝게 웃으며'에 뒤늦게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는 미장원 하는 L씨 부부 이야기를 썼을 땐 L씨 부부를 중매한 K씨가 전화를 해왔습니다.
"아니, 이왕 L씨 부부 이야기를 쓰려면 중매쟁이인 내 이야기도 써 줘야지,어떻게 나를 속 뺄수가 있어 그래?"
칼럼이 나온 날 L씨의 남편은 미장원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로 글을 다 읽어 주었다고 합니다.'우리들 이야기가 여기에 나왔네'하고 재미있어 해 하면서...
그 글에 같이 등장했던 J씨는 며칠후 만난 자리에서 "여덟개 밖에 안먹은 만두를 아홉 개 먹은 걸로 썼다"고 난리를 쳤습니다. "내가 보니 분명히 아홉 개를 잡숫는 것 같더라"고 응수하자 J씨 왈 "니는 니 만두는 안먹고 남 만두 몇 개 먹는지 그것만 헤아렸냐? 이왕이면 열 두 개쯤 먹었다고 쓰지 그랬냐"고 눈을 홀겼습니다. 그러면서 "이기자(기자를 그만둔지 1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나는 이기자로 통합니다.)하고 있을 땐 행동 조심해야지 걸핏하면 칼럼에 써대니 겁나서 살 수가 없네"하고 주위사람들의 동의를 구했습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그러니까 말이요. 출연료 한푼 안 주면서 걸핏하면 제 칼럼에 우리를 등장시키네" 하고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모두 똘똘뭉쳐 나를 성토해도 그까짓 일에 기죽을 내가 절대 아닙니다.
"흥,영광인줄 아쇼들.그래도 나랑 친하니니까 칼럼에라도 써주지,신문엔 아무나 나오는 줄 아나?"
칼럼이 나오면 여기는 가끔 작은 소동이 벌어집니다.사골 우거지국 먹다 이빨 빠진 J씨의 이야기를 썼을 땐 J씨의 아는 사람들이 모두다 전화를 해 이빨의 안부를 물어봤다고 합니다.뿐만 아니라 새크라멘토 식당주들이 자신의 메뉴판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고 합니다. 혹시 우리식당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 메뉴판에 짬뽕과 사골 우거지국이 같이 있지 않은가,하고 말입니다.
곱게 늙은 이미자씨 이야기를 썼을 땐 K씨가 전화를 해왔습니다.이미자씨랑 조영남씨,그리고 패티김씨가 합동공연한 비디오 테잎을 보면서 K씨도 "별로 예쁘지 않던 이미자씨였는데 어쩌면 저렇게 곱게 늙었을까?참 귀티가 나네.나도 저렇게 늙어 봤으면.."하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그랬는데 며칠후 내 칼럼에 같은 내용의 글이 나왔다며 "니캉 내캉 생각이 같았네"하며 신기해 했습니다.
살빼는 이야기를 쓴 다음날엔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우연히 H씨를 만났습니다.H씨는 운동을 해야지,해야지 벼르기만 하고 여지껏 못했었는데 내 칼럼을 읽고 꼭 운동을 하기로 단단히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내 글에 자주 등장하는 이니셜 속의 사람들은 모두 나랑 친한 사람들입니다.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만나 식사를 합니다.동네가 좁다보니까,그리고 나랑 어울리는 사람이 정해져 있으니까 실명을 표기 안했어도 L씨가 누군지,그리고 J,K,Y씨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누군가가 나에게 그랬습니다.
"누군지 다 아는 사람들인데 이왕이면 실명으로 좀 쓰지 그래요? 같은 이니셜을 가진 사람들이 두엇 있어서 어떤땐 누구 이야기인지 헷갈리더라구요"
그의 말대로 같은 이니셜을 가진 사람이 여러명입니다. L씨가 세사람이고 J씨도 세사람 입니다.K씨도 역시 세사람입니다. 다행히 Y씨는 한사람 밖에 없네요.그러나 실명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이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앞으로 더 심한 이야기도 쓸 판인데 실명으로 썼다가 맞아 죽게요?
앞에도 말했듯이 이 사람들은 모두 나랑 친한 사람들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흉허물이 없는,서로의 약점을 다 알고 있기에 감출 것도,감출 수도 없는 정다운 이웃들입니다.
세월이 가면서 내겐 한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이 친한 사람들이 모두 나보다 나이가 예닐곱살 위인 사람들인데 이렇게 친하고 재미있게 지내다가 별안간 누가 먼저 하나 세상을 떠나 버리기라도 하면 그 슬픔을 어떻게 감당하나,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우나 하는 걱정입니다. 언제 칼럼에 한번 썼던 것처럼 J씨와 K씨는 묘자리와 영정사진 준비로 우리 가슴을 스산하게 하더니 이빨이 빠지고도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던 J씨가 최근에 앞가슴쪽이 아프다고 해서 '혹시 유방암이 아닌가'하고 모두 태산같이 걱정을 했더랬습니다. J씨가 만약 우리 사이에 없다면....? 생각만해도 가슴 한 편이 텅텅 비는 것 같습니다.다른 사람은 물론이지만 특히 J씨는 오래오래 우리곁에 머물러 주어야 합니다.그녀의 빈자리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J씨는 병원 진찰결과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우리는 여전히 즐겁게 지냅니다.
며칠전 모든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는 자리에서 나는 그동안의 내 걱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나보다 나이가 위인데 이렇게 정답고 재미있게 잘 지내다가 이중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나 버리면 슬퍼서 어쩌지요?"
누군가가 일갈합니다.
"얘야, 니가 우리보다 나이좀 어리다고 맘놓고 깝죽거리는데 가는 것은 나이순이 아니라 명순(命順)이란다.재수없으면 나이 어린 니가 제일 먼저 갈지도 모르니 큰소리 치지 말아라."
지금 나의 바람은 딱 한가지,정다운 우리 이웃들과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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