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분석] 'AP 한국어' 채택 어디까지 왔나…수강생 늘어도 공교육 확대 절실
중국·일본어 비해 정규학교 한국어반 태부족
한국정부, 재정 지원 줄이고 말로만 "노력중"
충분한 학생 수요 보여주는 것이 우선 과제
한국어 교육 확산의 '열쇠'로 여겨지는 AP(Advanced Placement.대학학점선이수제) 한국어 과목 개설까지는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55년부터 시작된 AP는 우수한 학습 능력을 갖춘 고교생이 미리 고등학교에서 대학 학점을 수강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고교에서 대학 수준의 과목을 이수한 후 칼리지보드가 시행하는 AP시험에 합격하면 대학에서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AP과목 가운데 외국어는 중국.일본.스페인.프랑스.독일.이탈리아.라틴어 등 총 7과목이다. 대입 경쟁력을 높이면서 학점도 미리 취득할 수 있어 우수한 학생이 몰리는 AP과목에 한국어가 포함된다면 현재보다 미국 내 한국어 교육 열기가 휠씬 뜨거워질 것이라는 것이 교육계의 바람이다.
하지만 지난 2000년대 중반 AP 중국.일본어가 채택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AP 한국어 채택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 정규학교 한국어반 부족=AP를 주관하는 칼리지보드가 새 과목 채택을 위해 내건 조건은 ▶해당 과목을 가르치는 학교 500곳 이상 ▶AP시험 운영에 필요한 경비 150만 달러 예치 등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어반 개설 현황을 살펴보면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한국 교육부가 미주 지역 한국교육원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11월 기준 미국 내 한국어반을 개설한 정규학교는 126곳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어진흥재단에 따르면 2013~2014학년도를 기준으로 한국어반이 있는 전국 중.고교는 85곳에 불과하다.
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2013~2014학년도 기준 전체 한국어반을 개설한 정규학교 124곳 가운데 43%에 달하는 52개 학교가 캘리포니아주에 집중돼 있다. 반면 뉴욕주에는 23개 학교에만 개설돼 전체의 19%에 불과했다. 또 한인 학생이 많은 뉴저지주는 단 3곳에 그치고 있다. 이는 서부 지역에 비해 동부 지역의 정규학교에서 한국어반이 더 늘어나야 함을 보여 준다.
◆ 한국정부 지원 미온적=AP 한국어 채택에 있어서 또 다른 어려움은 재정 문제다. 더 많은 정규학교에 한국어반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재정 지원이 필요하지만 한인사회만의 노력으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칼리지보드가 희망하는 한국어 시험 운영에 필요한 경비 예치금 150만 달러를 확보하는 것도 숙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가 다소 아쉽다는 지적이다. 본지가 확인한 2015년 한국 교육부 예산안에 따르면 해외 초.중등학교 한국어 보급에 50억9100원을 배정했다. 이는 2014년 56억6900달러에 비해 다소 줄은 것. 또 이 액수는 미주를 포함한 해외 전 지역을 포괄하는 것으로 한국어반 신설 지원을 위해서는 크게 부족하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AP 한국어 개설을 위해 꾸준히 관심을 갖고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크게 드러난 점은 찾기 힘들다.
지난 2013년 김상곤 당시 경기도교육감이 맨해튼에서 짐 몬토야 칼리지보드 부회장을 만나 "AP 한국어 채택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으나 그때뿐이었다.
이후 AP 한국어 채택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과거 AP 중국어 채택을 위해 보인 중국 정부의 노력은 "중국어를 수출한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AP 중국어 수업과 시험 개발을 위해 수십만 달러를 칼리지보드에 지원하는 한편 교사 양성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 2013년 AP 중국어 시험을 치른 학생은 4983명에 달했다. 이는 AP 외국어 과목 시험 가운데 스페인.프랑스어 다음으로 많은 숫자다.
◆ 5년 내 채택 목표=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희망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 한국어 교육계의 의견이다.
길옥빈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은 "5년 안에 AP 한국어 채택을 성사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어반을 운영하는 정규학교 숫자가 다소 적은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중.고교를 현재의 80개 수준에서 150~200개까지 끌어올린다면 칼리지보드 측의 긍정적인 태도를 이끌어낼 수 있다. 또 한국어의 경우 전국의 주말 한국학교 수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고 한국어 수업을 개설하는 대학도 꾸준히 늘고 있는 것도 장점"이라면서 "한국어 수업을 하는 학교를 늘려 AP 한국어를 수강할 학생 수요가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설명했다.
또 일각에서 AP 한국어에 대해 한인 학생만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정규학교 한국어반 학생 현황을 살펴보면 오히려 타민족 학생 수가 휠씬 많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한국어진흥재단 자료에 따르면 전국 한국어반의 타민족 학생 수는 2009년 1928명에서 2013년 6531명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반면 한국계 학생 수는 3000명대로 꾸준한 편이다. 타민족 학생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은 한국어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초 현대언어협회(MLA)가 2500여 개 대학을 조사해 발표한 '대학 외국어 수강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9~2013년 사이 한국어 강좌 수강생은 44.7%나 증가했다. 하지만 수강생 숫자로만 보면 2013년 기준 1만2229명으로 중국어(6만1055명)와 일본어(6만6740명)에 크게 못 미친다. 한류를 기반으로 한국어 학습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AP 한국어와 같은 공교육의 뒷받침 없이는 저변 확대가 쉽지 않음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서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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