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칼럼- 현대판 씨받이와 씨내리
이기준<논설주간>
그녀는 1837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호텔에서 처음 만난 영국의 대지주 찰스 골드윈(스티븐 딜런)과 사흘 밤을 지낸다.
부친의 빚 때문에 찰스의 씨받이가 되기 위해서였다.
찰스는 유산 상속의 대를 잇기 위해 자식이 필요했다.
찰스의 아내는 낙마사고로 식물인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딸을 낳고 딸은 곧 찰스에게 보내진다.
수많은 한(恨)과 딸에 대한 그리움의 날을 보내던 엘리자베스는 7년 후 결국 영국으로 향한다.
지난 1997년 윌리엄 니콜슨이 제작한 영화 ‘파이어 라이트(Firelight)’ 의 줄거리중 일부분이다.
지난 1987년 고국의 여배우 강수연이 동양인 사상 최초로 베니스 영화제 여우 주연상을 받은 영화 ‘씨받이’ 와 대조되는 작품이다.
씨받이는 우리 고국의 과거 봉건사회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처럼 유럽에서도 흔히 있었던 일이다.
단 우리 사회가 반드시 아들을 원했으나 서양은 아들과 딸을 구별하지 않았다.
봉건시대 반가(班家)에서는 시집 온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칠거지악(七去之惡)중 하나인 무자(無子)로 쫒겨나는 사유가 됐다.
그래서 다른 여성을 씨받이로 아이를 낳게 했다.
단 아들을 낳으면 논 한 마지기(약 200평) 정도를 대가로 줬다.
반면 딸을 낳으면 그 딸을 모친에게 쫒아보내고 양육비 정도로 쌀 몇 섬 정도를 제공했다고 한다.
불임의 원인이 남편에게 있을 때 비밀리에 이용한 것이 바로 씨내리다.
대갓집에서는 잘 생기고 체격좋은 하인을 골라 캄캄한 방에서 안방마님과 거사(?)를 치르게 하기도 했다.
고려 시대 1등공신까지 올랐던 허유(許猷)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는 힘좋은(?) 하인 덕분에 아들을 얻었으나 극심한 정신적 갈등 끝에 종내는 아내를 불구로 만들고 하인의 성기를 잘라버렸다.
씨내리로 얻은 아이가 자라면서 누구를 닮아가느냐도 비극의 씨앗이 되곤 했다.
우리 속담에 ‘씨도둑은 속이지 못한다’ 는 말도 이와 크게 연관돼 있다.
우리 소설에는 소금장수ㆍ땜장이 씨내리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씨내리는 과거 미국에서도 만연했다.
흑인을 노예로 사고 팔던 시절 체격이 크고 싸움을 잘하는 노예를 따로 골라 씨를 널리 뿌리게(?) 했다.
여기서 생산되는 우수한 품종(?)들을 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였다.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Roots)’ 에도 종마(種馬)처럼 취급되는 흑인 노예들이 나온다.
씨받이와 씨내리는 오늘 날에도 성행하고 있다.
몇년 전 미국의 세계적인 육체파 여배우 S.S가 낸 광고가 좋은 예다.
그녀는 ‘신장 185cm 이상에 I.Q 150이상의 잘 생긴 의사ㆍ변호사를 비롯한 전문직 남성의 정자를 원한다’ 고 한 것이다.
‘대가는 충분히 지불하겠다’고 돼 있었다.
‘하버드대 의대 출신의 젊은 의사나 교수들의 정자는 부르는 게 값’ 이라는 소문은 이미 오래 됐다.
이와는 반대로 지난 90년대 백인 여성의 광고도 있었다.
‘신장 180cm의 금발미인. 아이비 리그(Ivy League)대학생으로 난자 5만 달러’ 가 그것이다.
최근 LA 한인타운에서 난자 밀매가 성행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 병원은 인터넷을 통해 ‘1회 5천 달러’ 등의 난자 제공자 모집 광고도 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모 병원에 난자를 3차례나 제공했다는 K양은 ‘신장 170cm에 48kg, 미인형으로 명문학교 졸업’ 이라는 프로필까지 올려놓았다.
K양은 난자 매매로 석달 사이에 이미 1만여 달러를 벌었다는 소문이다.
난자 채취가 약간 까다롭기는 하지만 요즈음 같은 불경기에 이만한 돈벌이도 드문 기막힌 아르바이트다.
그렇지만 가히 현대판 씨받이 장사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자손이 될 수도 있는 생명의 세포를 계란처럼 매매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하다.
또 고국에서는 세계적인 줄기세포 생명공학의 권위자 황우석 교수가 난자 제공자와 관련된 윤리 문제로 곤경에 처해 있다.
참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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