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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낯익은 행복

안 성 남 / 수필가

낙엽의 사진을 찍었다. 잘 익은 잎사귀 하나 좋은 자리에 곱게 올려 놓고 정성 들여 사진으로 담아내다 보면 잘 만들어진 시 한 편을 마음속에 적어가는 기분이 든다. 손바닥만한 가을의 엽서 위에 쓰여진 속 깊은 언어가 화면 가득히 채워진다. 똑같아 보이지만 모두 제 나름의 농도와 색감을 가진 단풍 색깔이 드러나며 무심히 지나치던 얼굴들이 제각각의 표정을 보여준다. 자세히 보면 드러나는 잎맥의 신비한 모양새가 우리가 자랑하는 인간의 솜씨를 향해 웃고 있는 듯하다. 매일 낯익게 보아온 가을 풍경 속의 잎사귀 하나가 사진기 렌즈를 지나 새롭게 다가온다.

가을볕이 비치고 있다. 단풍 든 나무가지 사이를 지나 까만 씨앗 머리에 이고 흔들리는 꽃잎 떨군 꽃나무 위에 살며시 내려앉는다. 신선한 바람이 낙엽을 굴리고 계절이 깊어가는 뜨락에는 저무는 저녁 시간이 소슬거리고 있다. "그 하얀 가을 햇살에 실리는 작은 행복을 보았습니다." 흔들리는 의자에 앉아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어느 가을 정경을 보고 있던 흰머리 단정한 한 노인의 말씀이다.

혼자 살게 된 어느 남자가 고백 같이 하는 말이 있다. "어린이 놀이터에 작은 가족이 걷고 있었습니다. 아이 양쪽에서 손을 잡고 가는 엄마와 아빠의 아주 평범한 그 광경에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무심히 걷던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너무나 쉽게 생각해 오던 그 장면은 너무 낯이 익어 소홀히 취급하던 지난날 나의 생활이었습니다." 행복이라 부를 만한 그렇게 불러야 할 평범함이고 달력에 크게 표시된 날도 아닌 그냥 쭉 늘어선 날 중에 하나인 어느 날이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게 만드는 날이 되어 문득 눈앞에 있다.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 반지 끼워주고 원만히 이루어진 결혼을 선포하고 나면 자리를 옮겨 맛있는 음식과 여흥의 자리가 마련된다. 한쪽에 넓은 화면이 마련되면 신랑 신부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모습이 보여지는 사진.영상이 거기에 비추어진다. 각자 다른 곳 다른 가정에서 자라나고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들과 두 사람이 만나서 함께한 좋았던 순간들이 예쁘게 등장한다. 어쩌면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가 거의 비슷하게 공유하는 그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행복한 순간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의 기록이다. 가족과 친구들과 즐거웠던 때를 사진이라는 수단으로 붙잡아 놓은 그러면서도 그 당시에는 행복이라는 간판조차 내걸지 않았던 낯익은 그림들이다.

허락되었던 한 해가 어느덧 끝 시간에 가까워지고 있는 이때에 잠시 보내버린 시간을 돌아보면 그때는 그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간들이 탈색되어 낙엽마냥 굴러다닌다. 지나간 매일매일이 일 끝낸 낙엽 되어 발밑에 수북이 쌓인다. 무엇을 어떻게 채우고 이제는 마른 잎 되어 발길 따라 오며 사각거리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게 한다. 하나를 집어 들면 낯익은 풍경이 드러난다. 그저 그렇게 아무런 감동 없이 지나보낸 평범했던 하루가 낙엽의 언어를 들고 눈앞에 낯익은 얼굴로 마주 서며 속삭인다. 너는 그때 좋은 시절의 하나를 만나고 있었던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현명한 가슴이다.

낯익은 행복은 흘려 보내고 낯선 행복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공연히 바쁜 발걸음으로 저녁 시간이 쓸쓸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와 나눈 대화와 곁들인 차 한 잔 햇볕 좋은 날 걸어가던 가로수 길 반찬 없다고 투덜대면서도 시장을 반찬 삼아 맛있게 먹었던 저녁밥 매상이 흡족하지 않아도 하루의 피로를 털며 마감하던 하루 일과 이런저런 모양의 단풍 든 시간들을 바라보며 쓸쓸함을 덜어낸다. 지금을 만들어 낸 과거의 낯익고 고마운 순간들을 만나는 시간에 낙엽 하나의 잎맥을 따라가며 깨닫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좋은 시간들을 다시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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