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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이 위대하고 처절한 사투를

내달 11일 개봉 영화 '하트 오브 더 씨'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이것은 신화가 된 실화다. 집채만한 고래에 맞선 인간의 처절한 사투, 나아가 시대와 인간을 탐구하려는 지독한 열망. 영미 문학의 대표 걸작 '모비딕'(허먼 멜빌 지음)은 출간된 지 154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의 마음을 세차게 뒤흔든다. 허먼 멜빌(1819~91)이 31세에 이 작품을 쓰게 된 배경엔 비극적인 해양 사고가 있었다. 향유고래의 공격으로 선원 21명 중 13명이 사망한 에식스 호 침몰 사고다. 멜빌이 이 참사에 사로잡힌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 '하트 오브 더 씨(In the Heart of the Sea)'는'모비딕'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 사건의 실체에 다가선다. 이 영화의 시작을 '모비딕'의 한 구절로 갈음한다. "이제 경이의 세계로 향하는 거대한 수문이 열렸다."

김효은 기자 [email protected]

'하트 오브 더 씨'는 훗날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로 불리는 허먼 멜빌(벤 위쇼)의 젊은 시절로 시작한다. 1850년 겨울, 야심만만했던 서른 살 풋내기 작가, 멜빌은 은퇴한 고래잡이를 만나러 매사추세츠 낸터킷섬으로 향한다. 그는 에식스 호 참사의 생존자 토마스 니커슨(브렌단 글리슨)이다.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온 이 노인의 입에선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이야기가 터져나온다. '하트 오브 더 씨'는 이안 감독의 해양 표류기인 '라이프 오브 파이'처럼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액자 안에서 에식스 호의 비극이 펼쳐진다면, 액자 밖에선 니커슨의 이야기에 매혹되는 멜빌의 모습이 그려진다. 한마디로 영화는 신이 내린 걸작'모비딕'의 탄생기이자 그 자체로 스펙터클한 해양 재난 블록버스터이며 600페이지가 넘는 '모비딕'을 읽고 싶게 만드는 친절한 안내서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주인공, 대형 향유고래

1819년 포경선 에식스 호는 만선의 꿈을 품고 닻을 올렸다. 목표는 2000통의 고래 기름. 고래 기름은 석유가 없던 당시, 공장을 돌리고 마을을 밝히는 주요한 에너지원이었다. 포경선이 '움직이는 석유 시추기'였던 셈이다. 선원들은 기름의 보고인 향유고래를 찾기 위해 대서양을 지나 미지의 바다 태평양으로 나아간다. 항해 15개월째, 고래 떼 사이에서 이들은 운명의 숙적을 맞닥뜨린다. 몸 길이 30m, 무게 80톤의 괴물,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베일에 쌓인 존재, 대형 향유고래였다.

영화 전반부는 에식스 호가 고래 사냥에 나서는 이야기가 웅장한 해양 블록버스터로 펼쳐진다. 마치 관객을 에식스 호에 태우고 항해하듯 영화는 뱃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바다의 경이를 체험케 한다. 폭풍우를 뚫고 전진하는 뱃사람들의 기백을 구경하기 무섭게, 작살을 던져 고래를 잡는 19세기식 고래 사냥법이 눈앞에서 호기롭게 펼쳐진다. 물론 그 절정은 에식스 호의 선원들을 삽시간에 혼비백산하게 한 고래의 위용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고래는 인간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크기와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값싼 재난영화에 등장하는 조악하고 교활한 괴물과는 달리 영험한 기운을 뿜어낸다. 론 하워드 감독은 "이 영화 속 고래는 분명 '죠스'와는 다르다. 오히려 '킹콩'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고래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을 때 이에 대한 반응은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239톤의 배를 10분 만에 침몰시킨 고래의 일격은 이 영화가 매설한 회심의 일격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참혹한 표류기

소설 '모비딕'은 고래와의 대결에서 소설의 절정을 맞는다. 반면 '하트 오브 더 씨'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실제 에식스 호 선원들은 배가 침몰한 후 소형 보트 세 대에 옮겨 타 살아남았다. 남태평양의 한가운데서 작은 나무 보트에 의지한 채 이들은 94일을 표류한다. 스물한 명의 조난자 중 살아남은 사람이 단 여덟 명 뿐이었던 참혹한 표류기가 영화의 후반부를 장식한다. 최근 바다 표류기는 영화에서 종종 다뤄졌다. 2013년작 '올 이즈 로스트'가 홀로 바다에 남은 한 남자의 감동적인 생존기였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찬란한 바다 풍경을 흩뿌려 놓은 판타지에 가까웠다. '하트 오브 더 씨'는 이들보다 더 잔혹하고 비극적인 풍경을 펼쳐놓는다. 건빵으로 연명하던 생존자들은 점점 식량이 떨어지면서 하루아침에 서로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적으로 돌아선다. 희망이 사라지고 죽음이 엄습해 오는 위기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적인 민낯은 고래의 공격 못지않게 공포스럽다. 물론 그럼에도 이 작품엔 생존을 향한 인간의 숭고한 분투와 거기에서 오는 감동이 있다.

영화는 무척 사실적이다. 실제 에식스 호 침몰 사고를 방대한 취재를 통해 재구성한 논픽션 '바다 한가운데서'를 영화의 원작으로 삼았기 때문에 디테일이 촘촘하게 살아 있다. 하워드 감독은 많은 분량을 아프리카 북대서양에 위치한 카나리아섬 인근 해역에 보트를 띄우고 촬영했다. 감독은 주간지 엔터테인먼트와의 인터뷰에서 "상황은 점점 영화라기보다 현실처럼 되어버렸다. 정말 보트에 몇 시간씩 갇혀서 표류해야 했다. 육체와 감정 그리고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때때로 보트를 타고 해안에서 6~7㎞ 떨어진 곳까지 나갔고, 폭풍우를 만나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겪으며 영화가 담으려했던 자연 앞에서 인간의 무기력함을 실감하기도 했다. 배우들은 하루에 고작 500칼로리를 섭취하고 매일 운동을 하며 단시간에 살을 뺐다. '사람들의 눈이 두개골 안으로 가라앉고 광대뼈가 튀어나왔다. 탈수증과 기아로 그들은 인간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바다 한가운데서'의 묘사를 떠올려보면 배우들의 고충이 여간 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배우들은 이 이야기에 대단한 존경심을 보여줬고, 그것은 많은 것을 가능케 했다." 하워드 감독의 전언이다.

번역가 김석희 서울대 교수는 '모비딕'을 옮기며 번역 후기에 "복잡 미묘하게 잔물결이 이는 해수면처럼 보는 사람의 눈높이에 따라 다양한 빛을 내는 소설"이라 썼다. 그 모태가 된 '하트 오브 더 씨' 역시 다채로운 결이 있는 작품이다. 고래 기름을 향한 욕망이 들끓던 시대에 자연은 인간에게 어떻게 대항했고, 인간은 어떻게 무너져내렸는지, 살아남은 자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무엇인지 할리우드의 명장 하워드 감독의 손길로 만나볼 수 있다. 영화는 내달 11일 2D·3D·IMAX 3D 세 가지 버전으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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