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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태백산맥

채 수 호 / 자유기고가·뉴저지

조정래의 장편소설 태백산맥은 박경리의 토지와 더불어 우리나라 문학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작품이다. 수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안겨 준 이 두 작품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도 남을 만한 훌륭한 작품이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은 번역의 한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토지에 나오는 '별당아씨'를 영어로 'Annex Lady'라 옮긴다면 원래의 의미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말이 되고 말 것이다. 또한 태백산맥에서 감찰반장 염상구가 국민학교 교정에 집합시켜 놓은 좌익 가족들 중에서 외서댁을 보고 그 미모에 감탄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솔찮으시'라는 말을 'What a beauty she is' 하고 옮긴다면 찰진 전라도 사투리의 감칠맛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젊었을 때 처음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느낀 감동과 흥분은 지금껏 잊을 수 없다. 그때까지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도깨비처럼 뿔이 난 악마와 같은 존재들로 생각했었다. 태어나서부터 40여 년 넘게 젖어온 반공사상에 세뇌되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소설 태백산맥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그러한 세뇌의 색안경을 벗고 우리나라 현대사를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준 작품이다.

태백산맥의 이야기는 벌교에서 시작하여 벌교에서 끝난다. 해방정국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좌익과 우익사상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때 그 한가운데에 벌교가 있었다. 농민들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분배하겠다는 좌익사상은 악덕 지주들에게 착취당하고 있던 전라도 지방의 소작농들에게 쉽게 파고든다.

남로당 보성군당위원장인 염상진과 벌교경찰서 감찰반장인 염상구는 피를 나눈 형제간이다. 친형제끼리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원수가 되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다는 이 소설의 구성은 분단조국의 아픔과 민족상잔의 비극을 상징하고 있다.

작가 조정래는 염상진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에는 독자로 하여금 좌익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염상구를 이야기할 때는 우익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게한다. 또한 대지주의 아들이자 휴머니스트인 김범우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좌우 어느 편에도 속할 수 없는 인텔리의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민주화 항쟁이 절정으로 치닫던 1980년대 중반에 쓰여진 태백산맥은 나오자 마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350만 부나 팔려나갔다. 지금 와서 이 책을 좌편향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책은 이적표현물로 매도당하였다. 극우단체들은 1994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정래를 고발했고 11년간이나 끈 지리한 수사와 재판 끝에 2005년 결국 무혐의로 처리되었다.

이 책이 결코 이적표현물이 아닌 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의 말미에서 조정래는 공산주의를 철저하게 실패한 사상으로 결론짓고 있다. 마지막 장면은 음독자살한 외서댁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씻김굿을 하는 장면인데 여기서 무당 소화의 굿거리 사설에서 '명천지 만물 중에 사람밖에 또 있는가' 하며 인본주의 사상을 강조한다. 어떠한 사상도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고 인명을 가볍게 여기면 실패하고 만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대목이다.

공산주의 사상은 계급과 착취가 없는 완전한 평등사회 지상낙원을 이룬다고 하지만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인간의 목숨마저 혁명의 도구로 가볍게 여기고 있다. 또한 종교를 아편과 같은 것이라 하여 모든 종교활동을 금하고 있어 인간의 영적세계도 부인하고 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땅을 무상분배 받아도 수확된 곡물은 나라에 바치고 배급을 타 먹어야 한다. 계급과 착취가 없는 완전한 평등사회라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에 불과한 허구일 뿐이다. 공산주의 사회에도 고급당간부 당원 비당원 등 엄연한 계급이 있지 않은가.

소설 태맥산맥은 임권택 감독에 의해 1994년 영화화되었다. 소설을 영화화했을 때 대개 원작의 의도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태백산맥 영화는 소설 태백산맥을 그대로 영상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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