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대한 오해] '은혜 받는다'는 말의 의미
김형익 목사 / 벧샬롬교회
그런 의미로 말하는 사람들이 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 말처럼 교회에서 많이 오용 또는 남용되는 말도 없다.
은혜라는 말의 의미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호의 혹은 선물이다. 물론 호의를 베푸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는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는 우리 자신이다.
문제는 은혜의 정의가 아니다. 은혜의 정의를 달달 외운다고 은혜를 받는 것도 아니다.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자격 없는 존재라는 것을 실존적으로 인식하는 것인데, 인간이 자신을 그렇게 인식할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자기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투사된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 말을 오용 내지 남용하는 지점이 여기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알려주신 방법을 통해서만 하나님은 알려지실 수 있다. 유명 과학자들이 각종 조사와 연구의 결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그가 알게 된 하나님은 하나님일 수 없다. 인간의 지성에 의해서 완전하게 파악될 수 있는 대상은 인간과 같은 동일한 피조물, 즉, 자연이거나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여야 한다. 애완견이 주인을, 지렁이가 인간을 완벽하게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알리셨다. 그래서 기독교의 일어섬과 넘어짐은 성경에 달려있다. 교회의 모든 모임은 성경 중심이어야 하고 예배의 많은 요소 가운데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이유가 여기 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들려지고 보여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보이신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것이 설교이거나 성경공부 혹은 읽기 또는 묵상이거나 하나님께서 보일 때,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 앞에서 인간은 자기의 무가치성을 깨닫고 인식한다.
설교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말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인간은 은혜를 받는다. 이것은 단지 기분이 좋아지거나 감동을 받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앞에서 자신의 무가치성을 인식하는 경험은 깊은 감동을 가져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은혜를 받는 것은 감동 이상이다. 은혜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겸손해진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과 선하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호의 앞에서 무가치함과 더러운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계속 그 자리를 즐길 사람은 없다.
은혜를 받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사람을 변화시킨다. 이 점에서 오늘날 교회를 돌아보면, 우리가 은혜를 제대로 받기는 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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