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히틀러 국민차 제작 지시 1936년 명품 '비틀' 탄생
파세트-뉴비틀-제타 튼튼한 생산라인 강점
폭스바겐사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컨셉카의 날렵한 모습.
독일을 경제공황으로 부터 번영을 이끌어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게르만 제국을 만들겠다는 정치이념으로 히틀러는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꾀했다. 히틀러는 자동차 전용도로인 아우토반을 건설하고 모든 독일인들이 저렴한 가격에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국민차'를 만들것을 명령한다.
히틀러는 독일자동차산업의 아버지이자 포르셰사를 창립한 페르디난트 포르셰박사에게 국민차 설계를 지시했다. 폭스바겐(Volkswagen)은 독일어로 '국민차'라는 의미이다. 히틀러의 지시로 탄생한 폭스바겐사는 1936년 10월 저렴한 가격에 부담없이 구입가능한 국민차 '비틀'을 제작했다.
포르셰의 대표적인 스포츠카 911과 그 전신인 356모델이 폭스바겐 비틀과 놀랍도록 비슷한 이유는 두 자동차 모두 포르셰박사가 직접 디자인을 맡았기 때문이다. 딱정벌레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디자인의 비틀은 1978년 1월 단종될때까지 42년간 단 한번의 모델 체인지없이 그당시 세계최고였던 단일차종 1927만대의 생산기록을 세웠다.
비틀의 단일차종 생산기록은 3000만대를 생산한 도요타 코롤라에 의해 깨어졌지만 60년대 히피문화를 상징하는 자동차로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폭스바겐사의 공장은 2차세계대전때 연합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파괴되었으나 복구작업을 통해 다시 생산을 재개하였고 시장변화를 꾀하기 위해 판매시장을 승전국인 미국으로 확대했다.
1953년에는 유럽자동차 회사중 최초로 남미 브라질에 현지법인을 설립했으며 1969년 고급 브랜드인 아우디사를 합병했다.
폭스바겐사는 독일과 멕시코의 국민차였던 비틀의 후속작으로 '레빗'을 선보였으나 큰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발표한 파세트(Passat)가 호평받으며 비틀에 이은 대 히트작이 되었으며 곧이어 출시된 골프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1990년에는 체코의 국영자동차회사 '스코다'를 인수하여 유럽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했다.
1998년에는 롤스로이스와 람보르기니를 인수해 바야흐로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또한 공전의 히트작 비틀을 새롭게 디자인한 '뉴비틀'을 1990년대 후반들어 선보였다. 뉴비틀은 1994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컨셉1'이라는 이름으로 출품돼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몇몇 열광적인 매니아들은 생산되지도 않은 차를 구입하기 위해 자동차 값을 먼저 지불하겠다는 제의를 했을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파세트-뉴비틀-제타로 이어지는 튼튼한 라인업을 가지고 있는 폭스바겐 자동차그룹은 현재 GM 도요타 포드에 이어 세계 제 4위의 업체로 우뚝 섰으며 고용 규모는 총 30여만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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