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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과학자의 세상읽기]찰스 다윈과 진화론 (1)

김중규(생명공학 박사)

“그렇다면 당신 조상 중 어느 쪽이 원숭이와 가족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요? 아버지 쪽이요, 어머니 쪽이요?”
1860년 6월 30일 토요일 영국의 옥스포드에서 개최된 영국 과학진흥협의회 총회 석상에서 영국학술원의 부원장이자 옥스포드대학교의 주교이며 극렬한 반(反)다윈주의자이기도 한 사무엘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가 ‘다윈의 불독’ 이라 불릴 만큼 다윈 진화론의 열렬한 지지자인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에게 물었다.
이윽고 헉슬리는 자신의 옆에 앉아있던 사람에게 “주교님께서 내 손바닥 안으로 들어오셨군요”라고 나지막이 속삭인 뒤 천천히 일어나 어떤 대답이 나올까 궁금해하고 있던 청중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진지하게 과학 문제를 토론하는 곳에서 사람에게만 주어진 지적 능력을 저렇게 무례하게 사용하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원숭이의 후손이 되겠습니다.

이런 웃지 못할 역사적인 설전은 곧바로 당시 신문에 “과학과 신학의 싸움”이라는 제목으로 크게 보도되었고 결국 헉슬리의 판정승으로 귀결되었으며 윌버포스는 헉슬리에게 경솔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과학계에서 아직까지도 무식하고 무례한 사람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1809년 2월 12일 영국 미들랜드 서부지방의 한적한 시장 마을인 슈루즈베리에서 태어났다.
같은 날 공교롭게도 미국의 캔터키에서는 에이브라함 링컨(Abraham Lincorn)이 출생했으니 이 날은 인류 역사상 참으로 의미 있는 날이라 할 수 있겠다.

찰스 다윈의 아버지 로버트 다윈(Robert Darwin)은 성공한 의사로서 당시 사회적인 존경을 받는 유명인사 중 한 사람이었으며 어머니는 현재까지도 도자기 제조로 유명한 집안 출신이다.
불행히도 다윈이 여덟살 때 어머니가 사망한다.
그래서인지 다윈은 어린 시절 학업에는 관심이 없고 사냥과 개, 쥐잡기 등에 빠져 노느라 부인을 잃은 아버지의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고 한다.
청년 시절 가업을 이어나가라는 아버지의 강력한 권고로 에든버러 대학 의학부에 입학한 다윈은 한 아이가 마취 없이 수술받는 과정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아 수술실에서 뛰쳐나왔으며, 이 때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의학을 포기하고 법학으로 전공을 바꾸었으나 이내 따분함을 느껴 결국 에딘버러 대학을 중퇴하고 집으로 돌아가 빈둥거리다가 다시 아들을 목사로 만들고자 하는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하여 신학을 전공한다.
다윈은 목사 수업 중에도 식물학 교수인 스티븐스 헨슬로우와 친하게 지내며 여러가지 동식물과 곤충을 모으는 일을 계속했다.
또한 지질학자인 아담 세지윅(Adam Sedgwick)과도 절친하게 지내 1831년 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웨일즈지방의 지질을 조사하는 데 동참했다.
헨슬로우와 세지윅은 스승인 동시에 다윈을 평생 아껴 준 좋은 친구가 되었다.
다윈은 또한 캐임브리지대학 시절 박물학자를 따라갔다 온 흑인에게 돈을 주고 박제법을 배우기도 했다.

1831년 여름 다윈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인 일이 생긴다.
어느 시골 사제관에서 평화로운 삶을 보내야 할 것 같았던 그는 갑자기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게 된다.
때마침 나폴레옹을 물리침으로써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위세를 떨치게 된 영국이 그때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의 수로와 해안선을 조사하고, 여러 섬들과 항구도시들의 지리적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하려는 계획을 추진하였으며 이 일환으로 영국 해군성에서 당초 2년 예정으로 남아메리카와 태평양, 동인도제도의 수로를 조사하고 전세계 여러 곳의 경도 측정을 목적으로 전함 비글호에 탑승할 사람을 모집했던 것이다.
다윈의 집안은 당시 영국사회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명문이었고 비글호 탑승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매우 넉넉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윈에게 주어진 임무는 신분 때문에 귀족 이외의 사람과는 편하게 대화할 수 없었던 비글호의 선장 로버트 피츠로이(Robert Pitzroy)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말벗이 되어 주는 다소 엉뚱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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