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그레이 칼럼]미국과 셰익스피어 사랑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지 400년이 된 4월23일, 워싱턴DC 국회 의사당 뒷길에 있는 ‘폴저 셰익스피어 기념관 (Folger Shakespeare Library)에서는 하루종일 큰 축하행사를 열었다. 언어와 문화를 건너뛰고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세상 모두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처럼 기념관은 그날을 실내외에 다양한 프로그램를 마련해서 생일파티로 축하했다.기념관 곳곳에는 시인이며 극작가였던 그가 남긴 흔적이 전시되어 있다. 그의 친필 원고와 희귀본등 많은 장서들이 방문객을 맞았다. 특별행사를 찾아온 사람들로 붐비는 홀을 돌면서 오래전 영국에서 살았던 자유로운 영혼의 극작가와 미국의 인연을 본다. 17세기에 종교탄압을 피해서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은 이민 봇짐에 셰익스피어 책을 넣어왔다. 신대륙에 도착해서 뉴잉글랜드 땅을 개척하면서 그들은 셰익스피어 책을 읽었고 희곡을 공연했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해가 1776년이지만 연극장이 문을 연 것은 1718년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헌법이 제정되기 훨씬 전에 연극단이 창설됐고 영국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후에는 셰익스피어의 시와 희곡 전 작품의 미국판이 필라델피아에서 프린트 됐다. 동부에서 남부로 서부로 개척지를 넓혀가는 곳마다 셰익스피어의 책들도 함께 독자를 확보해 나갔다. 재담과 익살이 가미된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이민자들의 향수를 달래주고 척박한 땅을 개척하느라 힘들고 지친 그들을 위로했다. 더불어 무법천하에서 인간의 양심과 도덕성을 지키도록 도왔다. 그후 대대로 미국작가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고 즐겨 인용하면서 셰익스피어의 문학은 미국인들의 생활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사랑받는다.
기념관에서 유리관 안에 전시된 오래전에 발간된 그의 서적을 보면서 10년 전 영국 중부에 있는 스트랫포드-어폰-에이번 (Stratford-upon-Avon)에 가서 셰익스피어의 생가를 찾았을 적에 가졌던 감동이 다시 물큰하게 내 속에서 일어났다. 그때 시간을 거슬러 중세로 나를 데려갔던 고풍스런 생가의 목조건물의 문턱을 넘으면서 가졌던 묘한 기분도 새롭게 나를 충동했다. 그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세상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엄청난 사실에 가슴 떨었던 기억에 벽에 걸린 거대한 그의 초상화를 봤다. 그의 생가에서 쓰나미처럼 몰려와 나를 씌웠던 그의 숨결이 이곳 기념관에서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고 묵직하게 나의 오감을 장악했던 파장도 액자속에 잠긴 평화로 멀찍이 머문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생가 마을에서 본 명소들 중에 아담했던 ‘하버드 집’이 생각난다. 딸이 다니며 좋은 교육을 받은 대학의 창설자인 존 하버드의 어머니 캐서린 로저스가 살았던 집이다. 그때 그곳은 “자손을 잘 출생시키는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명당터인가 보다”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더불어 ‘헨리 4세’에서 맹활약을 하는 몸집이 크고 해학적인 늙은 기사 폴스타프의 동상을 생각하니 미소가 나온다. 폴스타프의 유머스런 역활은 세상의 고뇌를 짊어진 햄릿처럼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폴저 기념관에 멈춘 셰익스피어의 흔적은 잔잔하게 고인 호수같은 느낌을 줬다. 영국에서 느꼈던 격한 감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이틀 후 셰익스피어 당시의 극장을 모방한 폴저극장에서 ‘Reduced Shakespeare Company’가 공연한 셰익스피어의 ‘Long Lost First Play’을 봤다. 이 연극단의 배우들이 직접 쓴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을 간략하게 추려서 재치있게 엮었다. 조금 체계적이지 못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됐다.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희극에 가득찬 인간의 온갖 기본 감정과 양심을 다룬 주제들이 빠르게 회오리 바람처럼 무대위를 동서남북으로 튀었다. 400년 전의 스토리들이 현시대의 유머있는 분장과 언어로 재밌게 착착 맞춰졌다. 코미디 공연이었지만 우리 부부와 딸내외는 셰익스피어의 날카로운 인간성 포착에 성공한 세 배우들의 명연기에 감탄했다.
나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푹 빠진 날들이 이어졌다. 집에 돌아와서 몽고메리에 있는 앨라배마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다시 그의 작품 ‘실수의 희극 (The Comedy of Errors)’을 보며 유쾌한 에너지를 듬뿍 받았다. 작품을 통해서 셰익스피어는 진실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는 격언을 증명한다. 그리고 우습지만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은 요즈음 남편이 심심풀이 땅콩으로 만사에 사용하는 문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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