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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점봉 기자의 타임머신]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라파엘로를 찾아서(I)

일간 플러스에서 소개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리고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고전적 예술을 완성한 3대 천재 예술가의 한 사람이 바로 라파엘로(Raffaello Sanzio)다. 1483년 이탈리아 중부의 우르비노에서 궁정화가인 아버지 조반니 산티와 마자 디 바티스타 치아를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유명한 화가인 페루지노에게서 전반적인 이탈리아 미술을 배웠으며, 1504년 피렌체로 옮겨 살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을 공부했다. 당시 라파엘로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모든 화가들은 그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즉 페루지노의 차분하고 정교한 기법은 라파엘로의 첫번째 주요 작품인 "동정녀 마리아의 결혼식"에 영감을 주었으며 그 후 피렌체에서 예술적 전통에 고취되면서 다 빈치의 명암법을 배워 피렌체파의 화풍을 발전시켜 나갔다. "도니 부처상" 외에 당시의 초상화는 물론 그 시대에 가장 많이 그려진 성모자상에서도 성모의 자태나 피라미드형 구도에 있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이 뚜렷하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매장"(로마)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선의 움직임까지도 모방하였다. 그러나 그는 선인의 기법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여 화면구성에 있어서 선의 율동적인 조화라든지 인물 태도의 고요함이나 용모의 청순함 등에서는 언제나 독자성을 나타내었다.

이 시기에 "시스티나의 성모", "그리스도의 매장" 등 주로 성 모자상과 종교화를 그리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갔다. 특히 "아테네 학당"과 "성체의 논의"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상징적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리스 정신과 크리스트교 정신이 하나의 예술로 잘 승화되어 있다는 평이다.

라파엘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초청으로 1508년 로마에 가서 바티칸 궁전 서명실의 벽화와 천정화 등을 그리기 시작했다. 율리우스 2세의 뒤를 이은 레오 10세를 위해 일하면서 뛰어난 작품을 그렸으나, 37세의 젊은 아이에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의 작품은 유연한 형태와 평이한 구도뿐 아니라 인간의 고결함에 대한 신플라톤주의적 이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점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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