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본(Jason Bourne) 감독: 폴 그린그래스 출연: 맷 데이먼, 알리시아 비칸데르, 토미 리 존스, 뱅상 카셀 장르: 스릴러, 액션 등급: PG-13
'본' 시리즈는 할리우드 영화 사상 최고의 첩보물로 꼽힌다. 역사와 명성 면에서는 '007' 시리즈에 밀릴지 모르나, 탄탄한 짜임새와 숨막히는 액션, 주인공의 강렬한 카리스마는 세계적으로 숱한 추종자들을 만들어내며 엄청난 인기를 누려왔다. 하지만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3부작 이후 주인공 제이슨 본 역의 맷 데이먼이 하차하고, 스핀 오프 격으로 '본 레거시'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매서운 혹평만 받았을 뿐이다. '제이슨 본(Jason Bourne)'을 통해 9년 만에 맷 데이먼이 복귀하고, 시리즈 2,3편을 만들어 좋은 평가를 받았던 폴 그린그래스 감독까지 돌아오자 팬들의 뜨거운 환영이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이슨 본'은 꽤 즐길만한 액션 스릴러다. 평범한 첩보물로 생각한다면야 스토리와 스케일 양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기존의 '본' 시리즈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생각한다면 적잖이 아쉬움도 남는다. 물론, 주인공 제이슨 본이 30대 초반의 날쌔고 파릇파릇했던 모습에서 40대 중반의 다소 후덕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 세월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감안하고 봐 줄 수 있는 변화이기도 하다.
전 편 이후 자취를 감췄던 제이슨 본에게 전 동료 니키 파슨스(줄리아 스타일스)가 찾아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니키는 해킹을 통해 제이슨 본을 살인병기로 만들었던 또 다른 배후 세력을 알게 되고, 거기에 본의 개인사까지 얽혀 있음을 발견한다. 하지만 CIA의 새로운 국장 듀이(토미 리 존스)와 사이버 보안 담당 헤더(알리시아 비칸데르)가 발 빠르게 두 사람을 쫓고, 본에게 원한이 있는 킬러(뱅상 카셀)까지 합세하며 또다시 목숨을 건 무시무시한 추격전이 이어진다.
시리즈의 인증과도 같은, 전 세계를 돌며 벌이던 화려한 액션은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규모를 키웠다. 그리스, 아이슬란드, 영국, 미국 등지를 쉴 새 없이 바쁘게 돌아다닌다. 소요 사태가 한창인 아테네의 군중 사이에서 벌어지는 오토바이 추격신과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한복판에서 차 200여 대를 산산조각내며 찍은 자동차 액션이 대표적이다.
반면, 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던 빠른 리듬의 맨몸 액션은 그 분량이 현저히 줄었다. 볼펜 한 자루로도 상대방을 순식간에 제압하던 제이슨 본이건만, 이번엔 극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킬러와 짧은 몸싸움을 벌일 뿐이다. 사방에 산적한 적들의 움직임을 파악해 재빠르게 움직이고 귀신같이 몸을 숨기며 위험에서 빠져나오던 실력도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한다. 잃었던 기억의 조각을 맞춰 가려는 본의 정체성 찾기 노력은 이번에도 이어지지만, 이야기 진행의 핵심으로 자리했던 예전과 달리 곁가지 정도로 사용된다.
대신 듀이, 헤더, 킬러까지 조연 3인방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돋보인다. 처음부터 또렷이 악의를 드러내는 듀이의 비열함 섞인 굳은 표정, 속내를 알 수 없는 헤더의 차가운 얼굴이 내내 긴장감을 더하고,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질기고도 존재감 강한 적수인 킬러 역시 본과의 멋진 대결 구도를 만들어낸다. 조직 내부의 비리를 파헤치고 처단하는 전작들에 비해, 소셜미디어를 통한 감시와 통제로 우리의 일상까지 침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설정도 흥미롭다.